Friday, August 30, 2013

어깨동무



제목: 어깨동무
지은이: 정훈이, 최규석, 손문상, 김수박, 조주희, 박철권, 김성희, 윤필, 굽시니스트, 유승하
출판사: 창비
발행일: 2013년 2월 20일
오랜만에 만화. 하지만 이 만화는 엔터테인먼트 장르가 아니다.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는 만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으로, 만화 모음집이 나오는 것이 세 번째다. 맨 처음 것은 "십시일반" 다음으로 "사이시옷" 그리고 이 "어깨동무"가 나왔다.
과문하여 다른 나라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국가, 민족, 사회를 위해서라면 개인이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은 개인의 책임으로, 뒤쳐진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평등 이라거나, 인권 이라거나 하는 얘기를 들먹이면 거의 반사적으로 '빨갱이' 소리를 듣는다.
이런 나라에서 나온 인권에 관한 책이니만큼 어떻게 보면 참 뻔한 얘기들이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겪는 암담하고 우울한 얘기들이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흔히 보는 일이라서 무감각해 져 버린 얘기들이다. 재미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회사에서 데모하다가 용역깡패에 맞고, 경찰은 구경만 하다가는 둘 다 잡아가고, 용역깡패는 풀려나고 노동자는 잡혀들어가고...... 흔한 일상이다.
애들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간다. 지정된 교복을 입어야 하고, 지정된 머리모양을 해야 한다. 신발이나 가방도 아무 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면서 창의력을 기르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당연히 학원에 간다. 아니면 과외를 받는다. 밤 열두시 까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불량학생'으로 분류된다. 역시 흔한 일상이다.
아파트에 혼자 살던 노인이 죽는다. 온 아파트에 시체 썩는 냄새가 나야 발견된다. 역시 너무 흔해서 이제 신문에도 안 나는 일상이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그냥 집행유예고 피해자는 평생 손가락질 당한다. 좀 어이없지만 이것 역시 너무 흔한 일상이다.
뭐 이런 얘기들.
지금 와서 이 책 읽는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도 않고. '나부터 바뀌어야.....' 같은 진부하고 덜떨어진 소리는 정말 역겹기 짝이 없다.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치고 먼저 바뀌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뭐 아직은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미숙할 수도 있겠다. 국제적으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로 한 협약은 1966년. 고문을 방지하기로 한 협약은 1984년.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로 한 것은 1989년.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로 한 것은 2006년!
회장님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휠체어 코스프레 한 번 해 주시면 입행유예고 노동자는 소리만 한 번 잘못 질러도 몇백만 원씩 손해배상을 하는 나라에서 이런 책 보면서 언젠간 내게도 인권이 생기겠지 하는 기대를 하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선 남을 짓밟을 기회가 있으면 짓밟으라고 권해주는 쪽이 좋지 싶다. 재벌 회장이나 고위공직자 친인척쯤 되지 않는 한, 존엄한 인간이라기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의 일종으로 분류되는데, 아무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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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26, 2013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 논쟁


제목: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 논쟁 (The Discovery of Global Warming)
지은이: 스펜서 위어트 (Spencer R. Weart)
옮긴이: 김준수
출판사: 동녘 사이언스
발행일: 2012년 3월 30일 (원저 2008년 10월)

여기 저기 뒤져 봤지만 저자의 가운데 이름은 찾지 못했다. 특별히 감춰야 할 만한 이유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특이하게도 아마존 등의 해외 사이트에도 그냥 R. 만 나와 있다.
지구온난화. 예전에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는 과학적인 신뢰성이 어딘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 같은 단어를 들으면 온난화 같은 것은 대규모 마케팅 이벤트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래서 이번엔 온난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다루었다는 책을 골랐다.
지구 온난화. 여기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지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오래 연구한 사람들도 확실치 않은 부분이 많다. 그만큼 아직까지는 반박의 여지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화석 연료에 집착하는 긴영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지구 온난화는 허구라는 주장을 종종 한다. '아직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은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원제는 지구온난화의 발견. 번역된 제목은 대논쟁. 내용은 논쟁보다 발견에 가깝다.
꽤 오래 전, 책에 의하면 1859년에 대기의 변화가 기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1896년에 인간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 이후의 과정은 거의 그 말이 정말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다.
과연 어떤 과정으로 기후가 변했을까? 가설을 세운다. 그 가설대로 모형을 만든다. 그리고 그 모형이 실제 기후를 잘 설명하고 있는지 검증한다. 뭔가 다르다면 왜 다른지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무한 반복.
이런 반복 과정에서 대기 조성, 오염 물질, 태양의 활동 주기, 지구 세차 운동, 구름, 해류 등의 변수가 차근 차근 모형에 추가되어 점점 정교해 졌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발전하는 컴퓨터도 이러한 모형의 설계와 검증에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의 모형은 실제 기후를 거의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이런 저런 변수의 변동에 따라 기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상당히 믿음직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만들어 낸 모형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결론이 맞을 확률이 90% 에서 99% 사이 쯤이라고 생각한단다.
현재의 추세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계속한다면 21세기 말에는 평균 온도가 섭씨5.8도 가량 오를 수 있단다.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줄인다고 해도 한동안은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계속 기온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결론은 정말 과학자 답게 쿨하다. 이러이러한 정보들이 이만한 세월동안 이렇게 쌓여 있다. 결론은 대충 이렇다. 그래도 못 믿겠으면 말고. 뭐 이런 정도.
개인으로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 봐야 딱히 별 소용 없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은 '오~ 그렇구나. 그 전에 죽는게 다행이겠네~' 정도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21세기 말까지 살아남아서 뉴욕이 물에 잠기는 걸 볼 가능성은 거의 없는 데다가, 거의 고려되지 않은 변수인 돌발적인 화산 폭발, 대지진 등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구 온난화가 어느 정도 사실인지,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해갈 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입장으로 쓰여졌으니, 과학 같은 것보다 예수가 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읽는 쪽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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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12, 2013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제목: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のこされた動物たち 福島第一原発20キロ圏内の記録)
지은이: 오오타 야스스케 (太田康介)
옮긴이: 하상련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
발행일: 2013년 3월 10일 (원저 2011년 7월 27일)

남겨진 동물들. 후쿠시마 제1원전 20킬로이내의 기록.
저자는 사진가다. 유명한 분인 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는 왠지 작가의 이름이 전혀 일본어나 한자로 적혀 있지 않다. 우리 나라는 이상한 데서 일본의 흔적을 지우는 데 열심인 것 같다. 작가명과 저자명을 찾기 위해 한참이나 인터넷을 뒤져야 했다.
사진집. 그것도 동물을 찍은 사진집. 그중에도 남겨진, 혹은 버려진 동물을 찍은 사진집. 표지에 나온 고양이들처럼 경계의 눈빛을 보이긴 해도, 한때 사람 곁에 머물던 친구 또는 가족같은 아이들.
혹시라도 방사능에 오염되어 기괴한 돌연변이를 일으킨 동물들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여기엔 그런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으니 다른 데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신 여기는 그냥 너무나도 평범한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야옹이 들이 나온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본다면 한산한 거리에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개팔자 상팔자의 본보기일 수 있다. 그런데, 딱히 특별히 귀엽다거나 한 구석도 없는 그냥 평범한 개 사진, 고양이 사진.
현실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저 사진이 찍힌 장소는 표지에 나온 대로 후쿠시마 제1원전 20킬로미터 이내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이 정지했다. 이어 폭발이 발생하고, 방사성 물질이 다량으로 유출되었다. 20킬로미터 이내라면 현재까지도 출입 금지 구역일 거다. 사람들은 대피했지만 동물들은 남겨졌다.
처음 대피한 사람들은 이렇게 길어지게 될 줄 몰랐던 것도 있고, 대피소에 동물을 데려갈 수 없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동물들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단다. 사람들의 보살핌에 길들여져 있던 불쌍한 아이들은 이렇게 남겨졌다.
정작 끔찍할 만한 사진은 별로 없는 탓에, 사진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정작 저 사진에 찍힌 아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아이들이며, 이미 상당량의 방사선 피폭으로 훗날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흔히 삼사백 년에 한 번 이하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세계에 원자력 발전소가 삼사백 개 있다면 해마다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는 이런 점에 대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책의 사진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참상을 알리기엔 너무나 평화롭고 낭만적이다. 일부 떼죽음을 당한 소, 돼지 등이 나오지만, 공장형 목축업의 실상을 알리는 사진들에 비하면 훨씬 덜 충격적이다. 일부 사람들에겐 사람도 힘든 상황에 동물 타령 하고 있는 것이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원전 사고의 수습이나 경과 등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사람이 모두 사라졌을 때, 사람 곁에 있던 동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꼭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아니어도, 인간에게만 전염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라던지, 다른 이유로 사람들이 대규모 이주를 했을 때의 모습이다.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볼 만 한 내용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겐 별 영양가 없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동물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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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06, 2013

심야치유식당


제목: 심야치유식당
지은이: 하지현
출판사: 도서출판 푸른숲
발행일: 2011년 3월 30일

지인 한 분이 힐링이 되는 이야기라며 권해주신 책. 저자가 정신과 의사다. 과연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 모호한 정신과의 속성상 많은 한계를 느꼈나보다. 의료의 영역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보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환상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였다가 지금은 작은 바를 운영하는 사장님. 그 곁에 감초같은 조연 두 명. 한명은 내과 의사. 또 한 명은 정신과 수련의. 그리고 매 화 바뀌는 환자 또는 각 화의 특별 손님. 이런 저런 문제가 있었는데, 우연히 주인공이 운영하는 바에 왔다가 기적을 만나는 뭐 그런 스토리.
여기 등장하는 환자(?)들은 다음과 같다.

1. 48일 동안 잠 못 든 남자
2. 음식 중독에 걸린 여자
3. 밤이 무서운 요리사
4. 징크스에 갇힌 4번 타자
5. 공황장애에 걸린 남자
6. 회사원이 된 천재 음악가
7. 자신감 없는 여자
8. 직장인 사춘기에 걸린 여자

책을 읽어 가면서 힐링이 되기는 커녕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온다. 주인공부터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들 어느 정도 이상씩 나름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신에 무리를 주고 있는 약간의 걸림돌만 치워 주면 행복할 준비가 다 돼 있는 사람들이다. 속된 말로 '호강에 받쳐서 요강에 똥싼다'는 부류의 인물이 대부분이다. 진짜 미치도록 사는 게 어려울 것 같은 사람은 딱 한 명 잠깐 나오는데, 그나마도 다른 사람의 반대 되는 이미지 정도의 인물로, 그다지 비중이 없다.
정신과란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 정작 행복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을 때만 마지막 비밀 열쇠를 꺼내 보여 주는 그런 곳이었나?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서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떡하고? - 아무리 소설이어도, 병 때문에 월세가 밀리고, 돌려막기로 시작한 카드빚이 사채로 이어져 아무리 일해도 이자조차 버거운 상황을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해 주기는 힘들 것 같긴 하다.
소설인 만큼 의학적인 이야기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그래도 어떤 정신적 증상은 어떤 원인이 있고, 어떤 방법으로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이야기는 꾸준히 나온다. 문제는 그 증상 외에는 딱히 불편한 점이 없을 만큼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일 것. 일주일에 한두 번은 퇴근길에 바에 들러서 술 한 잔씩 해도 밥값 같은건 전혀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는 갖추고 있을 것. 그렇지 못한 경우는...... 음...... 모르겠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행복했을까? 의사와 환자로서가 아닌 개인 대 개인으로 누군가를 깊이 있게 만나는 느낌이었을까?
소설적 구조가 치밀한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의학적인 지식을 잘 정리해 주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으로도 뭔가 조금씩은 부족한 점이 있다. 그나마 누군가의 치유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고유의 미덕이랄까.
그냥 심심풀이로 읽을 만한 내용. 이미 가질 만큼 가진 것 같은데 왠지 행복하지 않다면 이 책에서 뭔가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너무 힘들어서 어딘가 기댈 데가 필요했다면 읽으면서 화만 날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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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난 왜 이렇게 염세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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