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6, 2012

굿 워크


제목: 굿 워크 (Good Work)
지은이: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옮긴이: 박혜영
출판사: 느린걸음
발행일: 2011년 10월 21일 (원저 1979년)




또 무성의한 제목 번역이다. 굿 워크. 영단어 work가 책에서 노동, 일 자체, 직업 등을 망라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적당한 한글 단어를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워크를 가져다 쓴 모양이다. 그러는 김에 굿 도 그냥 가져오기로 했나보다. 그럴 거면 번역은 뭐하러 하는데?

 이 책은 전반적으로 굿 워크. 말하자면 좋은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번 읽었던 '성장의 한계' 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물질 문명의 지속적인 성장은 멈출 수 밖에 없고, 그 지점에서 인간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실천적인 답이다. - 고도로 진행된 대규모 산업화와 그에 따른 분업화에 의해 인간은 노동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노동에 의해 고통받고 있단다. 그래서 거대 자본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는 대규모의 기술을 버리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중소 규모의 기술 체계로 돌아가자는 것이 주요 내용.

 실제로 저자는 스콧 배더 라는 특이한 형태의 기업을 운영했었단다. 직원위원회를 통해 모든 직원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소유권 회사. 그렇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규모, 직원간의 임금 격차, 심지어는 수익 까지도 일정 규모를 넘어가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단다. 그것이 1960년대의 일이다.

 현재, 2012년은 책이 쓰여진 1979년과는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모든 산업의 규모가 커져 버렸다. 심지어는 길거리 분식집과 구멍가게도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뛰어들고 있을 정도다. 금융 마피아라고도 일컬어지는 금융산업의 규모는 이미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거대 자본을 배제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도입할 수 있을까?

 저자가 제시하는 사회 또는 기업의 모양은 솔깃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이상하리만큼 영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처럼 놀라운 존재가 어떻게 원자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생겨났겠는가/ 말도 안 되지.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지. 인간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책 226쪽)

 참 편하기도 하시다. 일단 뭔가 잘 모르겠으면 그냥 '신의 뜻' 이라고 해 버리면 되니까. 그리고 저런 뭔지 모르는 것을 때우기 위해 갖다 붙인 껌딱지 같은 신과의 정신적 교감이 인간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라 여기고 있다. 이런 점에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못한다. 그저 고대인의 망상의 집합체에 불과한 신이 리만 가설이나 푸엥카레 추측, 아니면 P-NP  같은 것을 증명해 줄 수 있으려나?

 1970년대에 산업사회의 한계를 예측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 만 하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너무나도 어이없고 보잘것 없다.

 신과의 교감이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고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답이 없는 우울함일 뿐이다. 과연 자원 고갈과 양극화로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는 어떻게 변해가야 할까? 내 생각엔 적어도 신앙은 그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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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10, 2012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제목: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지은이: 구미정, 김진호, 이찬수, 유승태, 정용택, 전철, 박태식, 김창락, 백찬홍, 백소영, 이충범, 박영식, 최형묵
출판사: 도서출판 자리
발행일: 2012년 4월 12일



지난번의 '신 벗어던지기'와 비슷한 분위기의 제목이다. 교회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완전히 정 반대의 방향을 취하고 있다. 앞서의 책이 종교가 아닌 이성에 의한 교회 비판이라면, 이 책은 종교 자체에 의한 현실 교회 비판이다.

저자는 한두 명이 아니고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종교 연구가 또는 기독교 연구가다. 그래서 내용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 현대 한국 기독교의 행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도 되지 않는다.

각각의 장들은 하나의 기독교 용어를 선택하여 과연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다. 지극히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으로. 그래서 기독교 외부의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진정한 의미의 탐구보다 견강부회 내지는 어이없을 정도의 자기합리화로 보이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나처럼 기독교에 관심 없고 무신론자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책이다. 현실과는 거의 아무런 연결 고리 없이 그저 성경적 의미만을 논하는데, 일단 그 용어 자체가 내가 아는 단어의 의미와는 아주 다르다. 또, 주요 논거는 항상 성경인데, 그게 진리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기준에 따라 의미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한 번쯤 읽고 생각해 봐야 할 만한 책이다. 내가 과연 올바르게 기독교를 믿는 것인가. 내가 믿는 구원이 정말 성경에서 말한 그 구원인가. 직접 성경을 읽고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책 표지에는 저자중 세 명만 이름이 나와 있지만, 실제 저자는 13명에 달한다. 저자에 따라 논조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다. 대표저자가 머리말에서 독자들이 '다름'을 보기를 기대한다고 썼는데, 그 점은 충분히 달성한 것 같다.

원래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에 관심 줄 필요 없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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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03, 2012

내가 살던 용산

제목: 내가 살던 용산
지은이: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출판사: 보리
발행일: 2010년 1월 20일

만화책. 보통 사람들은 흔히 만화에 대해 가벼운 매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웃기거나, 재미있거나, 로맨틱하거나, 판타스틱 하거나, 아니면 에로틱 하거나...... 그런데 이 책은 만화책이면서도 위에 열거한 속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 어찌 보면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판타스틱한 일일 수는 있겠다.

용산참사.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들의 항의 농성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 6명이 사망했다. 나는 이 일의 전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힘 없는 사람들이 택한 최후의 저항이 죽음이라는 과격한 결과를 가져왔고, 억울한 사람이 무척 많으리라는 생각 정도 뿐.

이 책은 여러 명의 만화가들이 철거민 희생자들을 밀착 취재하고, 그 내용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다소간 공권력보다 철거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진작에 작가들이 고소, 고발을 당하고 잡혀갔겠지.

원래 내용 자체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잘 살던 사람이 막무가내로 내모는 '재개발 사업'에 떠밀려 어떻게 몰락하여 죽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니, 우울할  수 밖에 없다. 그중에도 특히나 더 읽는 사람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철저히 자본의 편인 경찰들이다. 용역 깡패엔 더할 나위 없이 관대하고, 철거민들엔 추상같은 경찰. 그리고 법원.

전철연 이라는 단체가 있단다. 전국 철거민 연합. 국내 주류 언론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데모와 시위를 전문으로 하는 의심스러운 단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살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 더이상 할 것이 없는데 어쩌라구?

어떤 상점이 있다. 1억원을 들여서 인테리어 등 투자를 하고, 월 오백만원 정도의 수입이 나온다. 계속 운영이 된다면 빚을 갚아 나가며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상점이 재개발 대상으로 결정된다. 상점의 운영자는 기껏 3천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들인 돈이 1억원이고, 그래서 빚이 5천만원이 넘는데, 보상금은 3천만원 남짓이다. 당장 수입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투자비 보전도 안된다. 저 보상금은 어떻게 계산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이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한 거다.

요구에 대한 대응은 아주 비열했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동네를 아주 슬럼화 하는것. 그러면 도저히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물론 경찰은 용역 깡패와 한편이다. 주민이 일방적으로 용역 깡패에게 폭행을 당해도 쌍방 과실이란다. 상점을 때려 부수고 오물을 투척하는 등은 증거가 없으므로 수사 대상도 아니다. 아마 현행범이어도 경찰은 모른척 할 게 틀림없다. 자본과 공권력과 용역 폭력이 하나로 뭉쳐서 힘없는 자들을 짓밟았다. 역시 자본과 결탁한 언론은 철저하게 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보도한 거라면 '전철연 또 폭력 시위' 뭐 이정도. 주민들이 당한 용역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이 책도 읽으면 화만 나고 답이 없는 책이다. 그림체도 내용도 우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오늘 저들이 당하고 나면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 재벌 오우너나 고위공직자라도 있지 않다면 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내용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무슨 올림픽에서 누가 메달을 따는 것보다는 훨씬 절실하고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재산이 다들 몇 억씩 되는 것처럼 판단하고 생각한다. 부자들을 위하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억울하면 출세하란다. 바로잡을 생각 따위는 없고, 가해자의 편에 서는 쪽을 권한다. 참 좋은 나라다. 돈 많은 사람한테만.

내 살아 생전에 용역 폭력이 처벌받는 것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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