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9, 2013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제목: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지은이: 이일훈, 송승훈
출판사: 서해문집
발행일: 2012년 7월 15일

표지에 나와 있듯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이 이 책의 내용이다. 잔서완석루. 낡은 책과 거친 돌의 집. 표지 사진은 그 집의 서재다. 저자이자 건축주인 송승훈씨는 집에서 서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국어선생님인 송승훈씨가 건축가인 이일훈씨를 찾아가 개인 주택을 짓고 싶다고 말한다. 당장은 아니고, 얼마 뒤 돈이 생기면 시작하고 싶다고. 건축가는, 그러면 시작하기 전까지 어떤 집을 지을 지 같이 생각해 보자며 그 내용들을 이메일로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이메일을 묶어 낸 것이 이 책이다.

와~ 정말 신기해. 남자 둘이 이메일 주고 받은 내용이 어쩌면 이렇게 낭만적인지 몰라~ 하는 내 반응에 지인 중 한 명은 '게이바에서 만났대?' 라는 반응을 보였다. 굳이 게이바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충분히 낭만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의심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지만, 두 분이 어떤 사이인지는 내가 간섭할 영역도 아닌 것 같다.)

처음 펼치는 페이지에 송승훈씨의 큰 사진과 함께 "이일훈 선생님, 선생님과 집을 짓고 싶습니다." 라는 화두 같은 문장. 다음 페이지엔 강렬한 검정 옷을 입은 이일훈씨 사진과 함께 두 번째 화두. "좋습니다. 송승훈 선생님. 그럼 제가 질문 하나 할까요?" 거기서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흑백이 반전된 설계도면과 함께 책의 주제가 나온다. "송 선생님은 어떤 집을 꿈 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건축가에게서 (아마도)예상 밖의 질문을 받은 송승훈씨는 오래 생각한 끝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이메일로 보낸다. 그 답은 '구름배 같은 집이고 싶습니다'.

낭만이 줄줄 흘러내릴 듯한 내용이지 않은가! 자칫 잘못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위험이 있을 만큼 낭만적이다. 건축가와 건축가가 비지니스를 진행하는 내용이라고는 전혀 보기 힘든 방식으로 의사소통이 이어진다.

건축가 이일훈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기 힘들었다. 강연도 하시고, 책도 내시는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생년월일이니, 가족사니 하는 것들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1978년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환갑을 훌쩍 넘긴 연세일 것으로 추정된다.

송승훈씨에 대한 정보는 더 적다. 국어선생님 이라는 점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이일훈씨보다 한 세대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날 것 같은데, 이 역시 알 수 없다. - 요즘 사진 기술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이 두 분이 쓴 이메일 들은 전혀 이메일 같지 않다. 여러 회사를 다니며 이메일로 많은 업무를 해 온 내게, 이메일이란 간결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 어떻게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정도가 거의 전부. 거기에 거의 아무런 의미 없는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라는 형식적인 문구를 앞 뒤로 덧붙이는 정도.

한때 이메일이 우편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이메일 역시 구시대의 유물처럼 밀려났다. 정치인들도 SNS와 메신저를 활용하고 있는 시대인데......

하지만 이 두 분은 이메일을 마치 예전의 종이 편지처럼 적는다. txt 파일을 첨부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런 부분은 너무 뜻밖이어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 텍스트는 본문에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나만 그런가?)

채나눔, 불편하게 살기, 늘려 살기 등. 멋진 것 같으면서도 선뜻 동의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개념들이 잔뜩 담겨 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방. 그래서 냉방기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 툇마루를 두고, 낮은 담장으로 이웃에 다가서면서도 내부에는 감춰진 공간이 따로 있는......

설계도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집의 모습을 얼른 그려 볼 수 없는 그런 건물인데, 그냥 사진만 훑어 봐도 정말 재미있겠다 싶은 집이다. 청소를 어떻게 할 지는 다른 문제고. 그런데, 집이라는 공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담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그것이 나에게도 정답일 수는 없다. 잔서완석루 역시 짓는 과정까지 멋진 좋은 집이지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자신만의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지 않을까? 그냥 흔해빠진 집, 재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내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을 갖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 보고 생각해 볼 만한 책이다. 다만 너무 쉽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람이라면 오글거리는 느낌이 없지 않을 거고, 집이란 그저 사서 살다가 팔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별 의미 없는 책이다.

뱀발을 덧붙이자면, 나는 욕조가 있는 욕실에, 큰 개 두어 마리 키울 수 있는 정원 정도에서 벗어나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하면 할 수록 갖고 싶은 것만 많아져서 큰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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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Blogger 한솔로 said...

설계과정은 낭만적이지만 집을 짓는 과정은 전쟁입니다. ^^;

6:09 PM  
Blogger Kitty said...

무슨 일이든 전쟁 아닌 게 있나요.
프로그램 짜는 일도 전쟁이던데..... -_-;

10:0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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