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23, 2013

너무 이른 작별


제목: 너무 이른 작별 (No time to say goodbye)
지은이: 칼라 파인 (Carla Fine)
옮긴이: 김운하
출판사: 궁리
발행일: 2012년 4월 30일 (원저 1997년)

또 죽음에 관한 책이다. 이번에는 자살. 예전에 'How We Die' 라는 책에서 생물학적인 죽음에 대해 살펴보았고, 얼마 전에 'Death' 라는 책으로 철학적인 죽음에 대해 알아보았으며, 이어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으로 사회적인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는 죽음의 전혀 다른쪽 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특이한 자살 이라는 사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일에 대한 책이다.
우리 나라는 명실상부한 자살공화국이다. 자살률 세계 1위는 당연하고, 2위와의 격차도 작지 않다. 실직자, 재수생,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은 당연하다시피 자살하고, 학생, 선생님, 가정 주부, 회사원, 공무원 등도 드물지 않게 자살한다. 심지어는 고위 공무원, 인기 연예인, 재벌 총수, 대기업 경영진 등도 자살자 명단에 있으며, 전직대통령이 거의 화룡점정을 하다시피 했다. 이제 현직대통령만 목록에 추가하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을 지경이니......
그런데, 1997년에 발간된 이 책이 2012년이나 되어서야 국내에 소개됐다. 다들 시험에 나오는 영어, 빨리 승진하는 직장인의 7가지 비법 같은 류의 책들을 찍어내느라고 '루저'에 불과한 자살자 따위에 관심 줄 틈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칼라 파인.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자살한다.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순간 이후로 저자의 삶은 무너져 내린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마지 못해 참석했던 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겨우 돌파구를 발견한 저자는 여러 사례들을 모아서 이 책을 썼다. 자살 뒤에 남겨진 유가족들이 겪는 독특한 슬픔과 어려움들을.
책의 내용은 참 처참하다. 가까운 누군가 어찌어찌 자살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이런 내용의 변주가 거의 전부다. 조금씩 저자의 의견이 적혀 있지만, 그리 크지도 않고 강렬하지도 않다. 그저 경험자로서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는 정도.
미국의 자살은 우리나라의 자살과는 양상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총기 자살이 가장 많다.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총기 면허 따는 것이 더 쉽다는 이야기도 있을 지경이니...... 반면 우리나라는 총기 자체가 구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총기 자살은 드문 편이다. 경찰, 군인 등의 특수 직업군이 아니면 애시당초 가능성이 희박하기도 하고.
또 한가지로는 자동차 사고가 많다. 차로 나무를 들이받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정도는 양반이고, 다른 차를 들이받기도 한다. 차고에서 배기가스로 자살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형태다. 아마도 개인용 차고 같은 것을 가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자동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운다.
자동차에서, 모텔에서, 아니면 자기집에서 걸핏하면 연탄불을 피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연탄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연탄 자체가 드물지 않나 싶다.
이런 갖가지 방법으로 '이승탈출'을 하고 나면, 뒤에 남겨진 사람은 어떨까?
가장 힘든 것은 '왜?' 라는 질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가 왜 자살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더이상 아무도 없다. 남은 사람은 아무리 애써 봐도 자살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심지어는 자살인지 사고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는데, 자살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은 애써 사고라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다음은 죄책감이다. 내가 그를 자살하게 한 건 아닐까? 내가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역시 부질없다. 한 번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무척 높으니까, 일시적으로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살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리고, 사회적인 터부 역시 남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우리 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어' 와 '우리 할머니는 자살하셨어' 는 생물학적 의미는 거의 동일한 데 반해, 사회적인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안그래도 힘든 유가족은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이지도 못하고, 위로받지도 못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소중한 누군가를 자살로 잃은 사람은 역시 자살할 확률이 무척 높다.
일단 자살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행동이다. 모든 본능은 삶을 향하고 죽음은 피한다. 그래서 특별히 '자살' 이라는 경우를 학습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극한 상황에 닥쳐도 그것을 선택지 중의 하나로 꺼내 놓지 않는다. 반대로, 중격적인 자살을 겪은 유가족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 가지 탈출구인 '자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어떠한 행동을 하던지 거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자살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비난해도, 아무리 애원해도, 죽은 사람은 더이상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다.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진 경우에, 이런 사실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혹시라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것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자살하면, 아마도 당신을 힘들게 하고 미워했던 사람은 거의 아무런 피해도 충격도 받지 않는다. 반면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당신을 따라 자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이런 걸 걱정 할 사람이라면 애시당초 자살 따위를 계획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삶을 쉽고 부드럽게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는 진짜로 고속도로 입구로 차를 몰았습니다. 제게 접근하는 첫 번째 트럭과 충돌하여 죽을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이 저를 멈추게 했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저는 제 아들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초래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경이의 감정을 갖고 있었건 간에, 자살이라는 무거운 짐을 손자들에게 떠안긴 채 떠날 수는 없었어요.
(본문 296쪽)
우리 아버지는 무척 오랜 와병 끝에 돌아가셨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느꼈을 고통, 고독, 공포 등은 아마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거다. 내가 그런 위치에 있다면? 아마 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살했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론 생각한다. 과연 아버지가 자살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랑 같은 감정도, 소중하다는 감정도 별로 없이, 심지어는 가족이라는 감정도 크게 느껴 보지 못한 아버지건만, 어느 날 자살한 모습을 내가 발견했다면......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죽기로 결심한 사람을 살릴 방법은 거의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자살률이 높은 곳에서는 더욱 어렵다. 그저 자살하지 말라고만 하지, 왜 자살하는 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냥 자살하면 '루저'다. 그래서 자살 유가족은 더욱 상처받고 절망한다.
이 책은 자살을 망설이는 사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불가피하게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잃은 피해자를 위한 책이다. 혹시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가 자살할까봐 불안하면 이 책을 읽어 보자. 또, 이 책을 권해 주자. 평생 자살 같은 것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되면 아무 상관 없는 판타지 같은 내용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자살이란 날이면 날마다 신문에 나오고, 누구든 마주칠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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