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전쟁
제목: 지도 위의 전쟁
지은이: 서정철, 김인환
출판사: 동아일보사
발행일: 2010년 5월 17일
제목을 보고, 처음부터 다소 짜증이 날 것을 각오하고 고른 책이다. 민족주의 감성이 충만한 현학적 아전인수를 보게 될 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고지도에서 찾은 한 중 일 영토 문제의 진실' 이라는 제목부터 이미 그런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으니까.
저자 두 명 모두 문학 박사. 한 명은 고지도 연구가, 다른 한 명은 동해연구회 홍보 담당 위원.
출판사도 왠지 거부감이 드는 출판사다. 유명한 신문 3사 중에는 흔히 가장 마지막에 거론되지만, 거의 '사회악'취급을 받는 점에서는 다른 두 회사 못지 않다. 애시당초 객관성 같은 것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읽다가 정 짜증나면 그만두고 다른 책을 읽지 뭐.'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의외로 아주 평이하다. 지도가 어떻게 만들어 졌고, 어떤 의미가 있다는 서문 격의 Part 1 이외에는 거의 동일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 마치 변주곡처럼 약간씩 다른 설명이 부가되기는 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누가 무슨 지도를 만들었다.', '누가 누구의 무슨 지도를 참고하여 어떤 지도를 만들었다.' 이정도. 거기에 간간이 저자가 겪은 일이 끼어들어 있는데, 대부분 희귀한 고지도를 어떻게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다.
Part 5와 6에서는 Korea 라는 명칭의 유래와 고지도에는 동해가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 지가 나온다.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으로, 얼만큼의 지도가 East Sea 혹은 Sea of Korea를 표시하고 있고, 얼만큼의 지도가 Sea of Japan을 표시하고 있는 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출판사 덕분에 이 역시 '교묘한 조작'일 지 모른다는 의혹이 없지는 않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독도가 우리 땅인지 아닌 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딱히 뭐라고 하기도 불편한 분위기다. 이제 개인사에서 친일은 오점이 아니라 그냥 선택일 뿐으로 여겨지는 지경이다. 굳이 반성하거나 할 필요도 없는...... 그런 상황에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바다를 고대 서양인이 East Sea 라고 불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점을 존중해서 East Sea가 되었다면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동쪽으로 가고 가고 또 가서 더 이상 갈 수 없을 데까지 간 곳에 있는, 동쪽 끝의 바다라서 East Sea 였을 뿐이고, 우리나라가 존재하는지 아닌 지도 모를 때도 있고, 존재 해도 섬인지 반도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일본조차 섬인지 반도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던데......
문학박사의 입장에서는 누가 무슨 지도를 참고하여 어떤 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지도의 역사에서 가장 소중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공돌이인 내 입장에서는 어떤 지도가 어떤 도법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도법은 누가 가장 먼저 고안했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 지가 더 궁금하다. 의도적인지 관심사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이 책은 철저하게 도법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메르카토르에 대해 얘기하면서 메르카토르 도법이라는 이름이 한 번 언급되는 정도에 그친다. 그 외에는 별다른 언급조차 찾아 보기 힘들다. 이점은 무척 아쉽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모습이 직사각형에 가깝게 그려진 지도를 두고 도법 운운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인 지도 제작자들의 이름과, 지도의 모양을 훑어 보고 싶다면 괜찮은 선택이다. 자료 사진은 풍부하게 삽입되어 있다. 하지만, '누구의 무슨 지도' 이상의 설명은 찾아 보기 힘들다. 또,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해 주기를 바라며 책을 집어 들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게도, 독도 영유권 등에 대해서는 점잖게 돌려 말하는 수준 이상의 주장을 펴지 않는다. 게다가 고지도에 언급된 지명 이외의 역사 관계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이 없다.
제목을 좀 적절하게 바꾼다면 나쁘지는 않은 책인데, 딱히 별다른 매력도 잘 안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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