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30, 2013

무대의 탄생

제목: 무대의 탄생
지은이: 소홍삼
출판사: 미래의 장

발행일: 2013년 3월 11일

부제가 '기획이 곧 예술이다'.
기획에 관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예술보다는 기획과 경영 쪽에 훨씬 비중을 둔 책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무대는 공연이 치러지고 그것을 감상하는 장소라기보다 투자가 이루어지고 손익이 계산되는 '사업장'에 가깝다. 따라서 어떤 공연이 성공했고, 또 어떤 공연이 실패했는지는 주로 얼만큼의 투자로 얼만큼의 수익을 얻었느냐로 평가된다.
자본주의. 현대 경제 체제. 거의 모든 것은 자본으로 설명된다.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 그래서 많은 자본이 필요한 예술은 더욱 더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라던지, 뮤지컬이라던지...... 그냥 혼자서 뚝딱 만들어낼 수도 있는 시, 소설, 그림 등은 그나마 덜하지만 '무대'라는 곳에 올려지는 예술 치고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하게 되고,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작품에 대한 기여는 화폐로 보상된다. 그다지 예술적인 절차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자본주의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제도는 아니니까.
인터넷 검색창에 연극, 뮤지컬 같은 것을 넣어 보면 우리나라에도 정말 믿기 힘들 만큼 많은 공연들이 치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어떤 것은 속칭 대박이 나서 레전드로 남는 반면, 상당 수는 그저 '듣보잡'으로 잊혀진다. 과연 어떤 공연이 대박이 나고 어떤 공연이 잊혀지는 것일까?
저자는 잘 기획된 공연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 목차에 따라 열 개의 공연이 있다. 어떤 것은 성공했고, 어떤 것은 실패했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연극열전
러프컷
운동장 오페라
악극
라이온 킹
앙상블 디토
남한산성
동춘 서커스
대장금
영웅, 더 뮤지컬
한편으론 냉정한 평가라고 여겨지는 반면, 다른 한 편으론 예술을 그저 돈벌이로 생각하는 점이 못마땅하다. 한편으론 이런 점들까지 잘 파악했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결과가 다 나온 일에 이러쿵 저러쿵 말 붙이기는 누가 못해 싶기도 하다.
아무리 기획자가 잘 포장을 해도 형편없는 작품이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반대로, 일정 이상의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작품은 이제 더이상 예술가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게 아닐까.
이제 예술도 예술가와 관객의 품을 떠나 자본의 일부가 되었구나 싶은 씁쓸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 비록 저자가 예술적,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도 꾸준히 언급을 해 주고 있지만, 씁쓸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딱히 기획이나 경영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위 목차에 나열된 작품들이 어떻게 성공 또는 실패했는지 분석해서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작품성보다는 수익성 위주로. 예술 쪽 사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자. 위 작품들의 뒷 얘기가 궁금한 사람도 볼 만 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봐 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예술, 특히나 공연 예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읽어도 무척 지루하기만 할 듯. (영화 얘기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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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23, 2013

너무 이른 작별


제목: 너무 이른 작별 (No time to say goodbye)
지은이: 칼라 파인 (Carla Fine)
옮긴이: 김운하
출판사: 궁리
발행일: 2012년 4월 30일 (원저 1997년)

또 죽음에 관한 책이다. 이번에는 자살. 예전에 'How We Die' 라는 책에서 생물학적인 죽음에 대해 살펴보았고, 얼마 전에 'Death' 라는 책으로 철학적인 죽음에 대해 알아보았으며, 이어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으로 사회적인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는 죽음의 전혀 다른쪽 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특이한 자살 이라는 사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일에 대한 책이다.
우리 나라는 명실상부한 자살공화국이다. 자살률 세계 1위는 당연하고, 2위와의 격차도 작지 않다. 실직자, 재수생,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은 당연하다시피 자살하고, 학생, 선생님, 가정 주부, 회사원, 공무원 등도 드물지 않게 자살한다. 심지어는 고위 공무원, 인기 연예인, 재벌 총수, 대기업 경영진 등도 자살자 명단에 있으며, 전직대통령이 거의 화룡점정을 하다시피 했다. 이제 현직대통령만 목록에 추가하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을 지경이니......
그런데, 1997년에 발간된 이 책이 2012년이나 되어서야 국내에 소개됐다. 다들 시험에 나오는 영어, 빨리 승진하는 직장인의 7가지 비법 같은 류의 책들을 찍어내느라고 '루저'에 불과한 자살자 따위에 관심 줄 틈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칼라 파인.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자살한다.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순간 이후로 저자의 삶은 무너져 내린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마지 못해 참석했던 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겨우 돌파구를 발견한 저자는 여러 사례들을 모아서 이 책을 썼다. 자살 뒤에 남겨진 유가족들이 겪는 독특한 슬픔과 어려움들을.
책의 내용은 참 처참하다. 가까운 누군가 어찌어찌 자살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이런 내용의 변주가 거의 전부다. 조금씩 저자의 의견이 적혀 있지만, 그리 크지도 않고 강렬하지도 않다. 그저 경험자로서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는 정도.
미국의 자살은 우리나라의 자살과는 양상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총기 자살이 가장 많다.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총기 면허 따는 것이 더 쉽다는 이야기도 있을 지경이니...... 반면 우리나라는 총기 자체가 구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총기 자살은 드문 편이다. 경찰, 군인 등의 특수 직업군이 아니면 애시당초 가능성이 희박하기도 하고.
또 한가지로는 자동차 사고가 많다. 차로 나무를 들이받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정도는 양반이고, 다른 차를 들이받기도 한다. 차고에서 배기가스로 자살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형태다. 아마도 개인용 차고 같은 것을 가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자동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운다.
자동차에서, 모텔에서, 아니면 자기집에서 걸핏하면 연탄불을 피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연탄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연탄 자체가 드물지 않나 싶다.
이런 갖가지 방법으로 '이승탈출'을 하고 나면, 뒤에 남겨진 사람은 어떨까?
가장 힘든 것은 '왜?' 라는 질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가 왜 자살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더이상 아무도 없다. 남은 사람은 아무리 애써 봐도 자살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심지어는 자살인지 사고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는데, 자살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은 애써 사고라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다음은 죄책감이다. 내가 그를 자살하게 한 건 아닐까? 내가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역시 부질없다. 한 번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무척 높으니까, 일시적으로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살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리고, 사회적인 터부 역시 남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우리 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어' 와 '우리 할머니는 자살하셨어' 는 생물학적 의미는 거의 동일한 데 반해, 사회적인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안그래도 힘든 유가족은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이지도 못하고, 위로받지도 못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소중한 누군가를 자살로 잃은 사람은 역시 자살할 확률이 무척 높다.
일단 자살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행동이다. 모든 본능은 삶을 향하고 죽음은 피한다. 그래서 특별히 '자살' 이라는 경우를 학습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극한 상황에 닥쳐도 그것을 선택지 중의 하나로 꺼내 놓지 않는다. 반대로, 중격적인 자살을 겪은 유가족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 가지 탈출구인 '자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어떠한 행동을 하던지 거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자살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비난해도, 아무리 애원해도, 죽은 사람은 더이상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다.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진 경우에, 이런 사실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혹시라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것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자살하면, 아마도 당신을 힘들게 하고 미워했던 사람은 거의 아무런 피해도 충격도 받지 않는다. 반면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당신을 따라 자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이런 걸 걱정 할 사람이라면 애시당초 자살 따위를 계획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삶을 쉽고 부드럽게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는 진짜로 고속도로 입구로 차를 몰았습니다. 제게 접근하는 첫 번째 트럭과 충돌하여 죽을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이 저를 멈추게 했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저는 제 아들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초래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경이의 감정을 갖고 있었건 간에, 자살이라는 무거운 짐을 손자들에게 떠안긴 채 떠날 수는 없었어요.
(본문 296쪽)
우리 아버지는 무척 오랜 와병 끝에 돌아가셨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느꼈을 고통, 고독, 공포 등은 아마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거다. 내가 그런 위치에 있다면? 아마 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살했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론 생각한다. 과연 아버지가 자살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랑 같은 감정도, 소중하다는 감정도 별로 없이, 심지어는 가족이라는 감정도 크게 느껴 보지 못한 아버지건만, 어느 날 자살한 모습을 내가 발견했다면......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죽기로 결심한 사람을 살릴 방법은 거의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자살률이 높은 곳에서는 더욱 어렵다. 그저 자살하지 말라고만 하지, 왜 자살하는 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냥 자살하면 '루저'다. 그래서 자살 유가족은 더욱 상처받고 절망한다.
이 책은 자살을 망설이는 사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불가피하게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잃은 피해자를 위한 책이다. 혹시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가 자살할까봐 불안하면 이 책을 읽어 보자. 또, 이 책을 권해 주자. 평생 자살 같은 것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되면 아무 상관 없는 판타지 같은 내용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자살이란 날이면 날마다 신문에 나오고, 누구든 마주칠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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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02, 2013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제목: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지은이: 김형숙
출판사: 뜨인돌
발행일:2012년 12월 7일

이번에도 죽음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오래 일했다. 그러는 동안에 느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으로 이 책을 썼다. 의학의 이름으로 중환자실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정말 옳은 일일까?
오래 전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1장은 프롤로그에 가깝다. 2장에서 바로 중환자가 된다는 것이 환자 자신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환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료진의 입장에서.
중환자. 집중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의료진의 끊임없는 관심을 필요로 하는 환자. 일단 중환자가 되어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나면 자신의 신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도 힘들고, 결정하기는 더더욱 힘들단다. 특히나 호흡곤란 등으로 기관 삽관 같은 거라도 하면, 그 이후 다시 자기 목소리로 말을 할 기회는 영영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병원측과 보호자의 온갖 이해관계와 서로 다른 가치관에 의해 내려지는 결정들이 환자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 있다. 환자는 다른 가치관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이건만 철저하게 배제된 채, 각종 계측기에 나타나는 수치로만 존재하는 정물처럼 대해진다.
이런 이유들로 자연스럽게 3장으로 넘어간다. 이별하기 어렵다는 것. 환자 자신은 스스로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 같은 곳에 놓여 있다. 과연 그러한 상태로 심장 박동을 유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까? 진정 환자가 원하는 일일까? 며칠을 모니터 속의 숫자로 지내는 것보다는 단 몇 시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내용이 죽음 이후 라는 제목의 4장까지 계속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지 가지 사연들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생각할 거리도 많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죽을 때,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 그다지 해 보고 싶지 않은 생각일 거라고는 추측되지만, 죽음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히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저자는 자신의 의사를 미리 정리해 둘 수 있는 수단으로 사전의료의향서 라는 제도가 있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알려준다. 아직 확립된 제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상태에 따라 어떤 치료를 할 지 말 지, 장기를 기증할 지 말 지 등을 미리 자신을 치료할 의료진들에게 알려 주는 것인 듯 하다.
현대 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당장 나부터도 현대 의학이 없었다면 죽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심각한 상황을 적어도 두세 번은 경험한 것 같다.) 저자도 맨 마지막에 이 부분을 분명히 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의학 외적인 문제점들도 돌아보고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저자의 경력도 그렇고, 책의 내용도 그렇고, 당연하게 각종 의학 용어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대부분은 친절한 주석이 달려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분명하지 않은 용어들이 있다. 나는 뇌사상태, 식물인간상태, (깨어나지 않는) 혼수상태가 어떤 점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저자는 이들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나로서는 좀 답답했다.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읽어 두면 좋을 내용이다. 다만, 지나치게 슬프고 우울한 내용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한 단어만 기억하자. '사전의료의향서'.
힘든 중환자실 근무 속에서도 인간을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신 저자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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