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5, 2011


제목: 프리 (Free)
지은이: 크리스 앤더슨 (Chris Anderson)
옮긴이: 정준희
출판사: 랜덤하우스
발행일: 2009년 11월 17일 (원저 2009년 7월)

내가 최초로 업무용이 아닌 개인 이메일 주소를 가질 때, 그 메일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지인이 추천해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무료로 POP3와 SMTP를 제공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서비스 이후에도 비슷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회사들은 꽤 많이 생겼고, 점점 더 많은 용량을 제공해 줬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최소한 7개 정도는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회사들이 POP3와 SMTP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돈을 내란다. 그래 봐야 돈 내고 쓰는 사람이 없었는지, 그 많던 메일 서비스들은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내가 생애 최초로 만들어던 이메일 주소의 서비스 업체마저 어딘가에 인수되었다가 문을 닫고 말았다. - 그 주소는 지금 현재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일들을 죽 지켜 보면서 언젠가는 결국 전화처럼 이메일 주소도 유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구글 메일을 만나기 전까지는.

구글 메일은 POP3/SMTP 외에 쇼킹하게도 저장공간을 2GB 나 제공했다. (내가 최초로 만들었던 메일 서비스는 1/100 정도에 해당하는 20M 였다!) 또, 그 저장공간이 날마다 조금씩 늘어난다. 현재는 거의 7.6GB가 되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전의 수많은 다른 이메일 서비스들은 왜 사라져 버렸을까?

이 책은 위 질문에 대한 경제학자의 답을 담고 있다.

무어의 법칙이라던지, 뭐 그런 법칙들에 의해서 컴퓨터의 저장공간과 전송속도, 처리속도는 일정 기간만에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있다. 마치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와도 같이 거의 주기적으로 절반으로 하락하는 가격은 0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구글은 그러한 점을 미리 예상했고, 따라서 이후에 가격이 무척 저렴해질 자원을 무기로 이용자들을 끌어모았고, 그렇게 끌어모은 이용자들을 바탕으로 현재 거의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기업에 속한다.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블로그 역시 구글에서 완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이고, 향후 이 서비스가 유료 서비스로 전환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왜 유료화가 불가능한지, 그 이유도 이 책에 나와 있다.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무료'를 '가격이 없음' 이 아니라 '0' 이라는 '가격'으로 보고 여러 가지 분석을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 또 시장에서 '0' 이라는 가격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예시들을 읽다 보면 이렇게 무료가 많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중 일부는 그냥 한눈에 사실상은 '무료'가 아니라는 것이 눈에 띄지만, 그밖의 많은 것들은 '0' 이라는 경쟁력있는 가격을 통해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른 재화를 획득하고 있다.

가격이 0에 수렴하는 풍부한 재화를 대가로 얻는, 상대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여기서는 '관심' 과 '명성' 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막대한 양의 관심과 명성을 다시 금전적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사업은 번창할 수 있는 것이다. - 구글은 '키워드 광고'로 훌륭히 그 일을 해 냈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상당히 잘 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은 디지털 환경에서 특정 재화의 가격이 '0'에 수렴하게 되는 이유와, '0'이라는 가격이 갖는 특성, 그리고 이들을 이해해야만 가능한 디지털 환경에서의 비지니스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일부 예시들이 한눈에도 '이건 무료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상당 수는 '아하!' 하고 감탄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비슷한 부류의 서비스인데, 왜 어떤 회사는 사라지고 어떤 회사는 번창하는지 궁금했다면, 이 책에서 약간의 힌트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이 조금 건조한 느낌이 들지만, '경제학' 이란 것을 딱히 달콤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Thursday, July 07, 2011


제목: 정재승+진중권 크로스
지은이: 정재승, 진중권
출판사: 웅진 지식하우스
발행일: 2009년 12월 15일

오랜만에 '가벼운'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바로 전 읽었던 몇몇 책들에 비하면 내용도 가볍고, 물리적으로도 가벼운 축에 든다. '무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라는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가 2명 이상이고(2명이다!) 그들의 전문 분야가 상당히 다르다. 한명은 미학, 한명은 뇌공학. 둘 다 '민간인' 들에게는 좀 생소한 분야다.

21개의 키워드로 21세기의 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시도로 쓰여진 책이다. 각 키워드에 대해서 미학자가 한 챕터, 뇌공학자가 한 챕터씩 '썰'을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엮여 있다.

여기에서 선정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프리 쇼, 20세기 소년, 헬로키티, 셀카, 쌍꺼풀 수술, 앤절리나 졸리, 프라다, 생수, 몰래카메라, 개그콘서트, 강호동 vs 유재석, 세컨드 라이프, 9시 뉴스, 레고, 위키피디아, 파울 클레, 박사.

일부는 확 와 닿는 반면 일부는 다분히 20세기적이란 느낌이 들고, 또 일부는 생소하다. 도대체 '민간인' 중에서 파울 클레의 작품을 세 개 정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파울 클레 가 칵테일인지, 무슨 스포츠 경기 용어인지, 남미 정치가의 이름인지도 확신하지 못할 텐데...... (내가 너무 무식한 걸까?)

두 사람의 글은 은근히 현학적이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세상에 앤절리나 졸리에 대한 전문가 같은 게 있기는 할까!)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이 책에 쓰여진 것이 저자들이 아는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같이 제프리 쇼가 트루먼 쇼와 비슷한 부류일 거라고 추측하는 무식한 독자를 위한 겸손한 배려일 것이다.

그 중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을 하나 소개한다.

과학자들에게 9시 뉴스는 애증의 연인이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9시 뉴스는 정치인들이 싸우는 얘기, 절망적인 경제 수치들, 사회에서 벌어진 각종 흉악한 범죄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 안에 과학자들이 치열하게 보낸 하루는 어디에도 없다. 9시 뉴스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그날 있었던 스포츠 경기 스코어보다 더 하찮게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에게 일깨워주는 고독한 시간이다.

평소에도 과학자들이 실제 사회에 공헌하는 바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게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은 정말이지......

위 인용문은 과학자가 쓴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편안하고 자유롭게 전개해 나가는 글들은 어떤 게 과학자가 쓴 거고, 어떤 게 미학자가 쓴 건지 얼핏 봐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시점과 자유로운 발상이지만, 안좋게 보면 몰개성이고 기준의 상실일 수도 있다. 공학자의 시선과 미학자의 시선이 그렇게 차이가 없다면 왜 저자가 2명이어야 하겠는가!

전반적으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책이다. 몇 개의 키워드는 '아하!' 하고 감탄이 나올 만큼 절묘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산만하게 흘러 버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 같은 것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 내가 무식해서 못 본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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