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19, 2008

제목: 뉴욕의 프로그래머
지은이: 임백준
출판사: 한빛미디어
발행일: 2007년 9월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왜 엔지니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없는 거냐?" 란 질문에 약간의 대답은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라 불리는 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의학 드라마 : 병원에서 연애한다.
파일럿 드라마 : 공군에서 연애한다.
경찰 드라마 : 경찰서에서 연애한다.
사극 드라마 : 조선시대에 연애한다.
호텔 드라마 : 호텔에서 연애한다.
스포츠 드라마 : 운동하다가 연애한다.
기업 드라마 : 회사에서 연애한다.
학원 드라마 : 학교에서 연애한다.

엔지니어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엔지니어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프로그램 짜다가 연애한다 쯤이 되어 줘야 할텐데, 도대체 이넘의 책에서는 연애질은 꿈도 꾸지 않는다. 오히려 잘 살다가 일에 미쳐 이혼하는 사람이 나온다. 꼭 '일에 미쳐서' 만은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_-;

이 책은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한다. 게다가 그런 용어들이 친절한 주석을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줄의 주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아닌 것도 많다. 더 안 좋은 점은 무협지의 알 수 없는 초식들처럼 화려하고 신비한 무언가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피곤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어쨌거나, 나는 직업이 Software Engineer 니까,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오~ 세상에, 이런 것도 소설이 되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이 가시고 나면, 아주 허탈하다. 그다지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 '주인공이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디버깅을 했다' 정도의 줄거리 - 독특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고유한 형식미를 담고 있지도 않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그 흔한 연애질 한 번을 하지 않는다. OTL....

프로그래밍 실력을 무협지적으로 과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은 한 번쯤 볼 만 하겠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이 이야기를 굳이 하드커버로 찍어낼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Tuesday, February 12, 2008

제목: 녹색 시민 구보씨의 하루
지은이: 존 라이언, 앨런 테인 더닝
옮긴이: 고문영
출판사: 그물코
발행일: 2002년 3월 5일

이 책은 구보씨 라는 가상의 인물의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비교적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얼마나 환경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지를 인식하고 생활 방식을 변경하자는 취지인 듯 하다.

원작의 구보씨가 미국 어디쯤에 사는 인물이었던 것을 번역 과정에서 한국 어디쯤의 인물로 바꿈에 따라 많은 부분들을 새로 쓰다 시피 조사를 해야 했을 번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동차를 타는 것, 그리고 육식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접시를 닦으며 욕조 한 가득 분량의 물을 쓰는 것이 고기 한 접시를 먹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정도라는 사실은 정말 의외였다.

모두들 온난화 온난화 떠들어 대니, 나는 청개구리처럼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인류가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환경은 조금씩 변해가지 않는가. 그런 거시적인 변화에 비하면, 바위 위에 붙은 이끼처럼 지구 껍데기 중에도 일부에만 복작대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일 따위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자는 양을 잡아먹으며 멸종을 걱정하지 않는데 왜 인간은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북극곰이 살이 찌고 빠지는 것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인류의 오랜 번영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인류가 굳이 오래 오래 번영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조차 내겐 불분명하다. 하지만 후손을 위해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고 생각해 봐야 할 일인 듯하다.

=^.^=

Friday, February 01, 2008

제목: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옮긴이: 이한음
출판사: 김영사
출판일: 2007년 7월 16일

모종의 사전에서
delusion

1 현혹, 기만
2 미혹, 환상, 잘못된 생각;【정신의학】 망상, 착각 ★ delusion은 개인의 「잘못된 생각」, illusion은 누구나가 빠지기 쉬운 감각적 착오.

"만들어진 신" 보다는 "신이라는 망상" 비슷한 번역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어린 시절, 여러 번에 걸쳐 살짝 맛이 간듯한 광신도들을 접하면서 어느 순간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생각보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주장을 강하게 밀어부칠 이유도 없었고, 별다른 근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신앙인" 들이 신을 믿는 만큼은 나도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고, 그들이 가진 근거보다는 내가 가진 근거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쓴 리처드 도킨스 라는 사람은 "안티" 로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았다.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모든 종교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풍부한 학식과 근거로 무장하고 조목 조목 들이대서 신이라는 환상을 까부순다. 나같은 사람으로서는 통쾌하기 그지 없다.

비지니스상의 잇점 등을 목적으로 신앙을 가지는 사람 외에, 정말로 자기 삶의 구심점으로서 종교를 가지는 사람에게는 꼭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다만, 이 책 역시 번역서로서의 한계가 많이 눈에 띈다. 지나칠 만큼 박식한 저자 탓에 어려운 학술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것을 그냥 그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나 쓸 것 같은 어려운 학술용 한자어로 번역해 놓은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다. 대표적인 예로 NOMA 라는 용어가 있다. Nonoverlapping magisteria 란다. "겹치지 않는 교도권" 이라고 번역했다. 양쪽 다 내게는 "빵상빵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디서 "교도권" 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찾아냈을까. 또, 인터넷 웹스터에서도 찾을 수 없는 magisteria 는 어디서 등장했을까. -_-; 또 원어가 뭐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인본 원리" 라는 단어는 문맥상 조금도 human 과 관계 없어 보인다. "인본주의" 라는 단어와 뭔가 유사한 듯한 이 단어는 전혀 관계 없는 듯한 의미로 종종 읽는이를 절망하게 한다. 이런 예가 몇 개인가 더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좀 덜떨어진 종교인들이 자기네들끼리 밥 먹을 때 마다 기도를 하건, 기도를 할 때마다 밥을 먹건 별로 관여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한테까지 밥 먹을 때마다 자기네 신에게 기도를 할 것을 권할 때면 왠지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그들이 "덜떨어진" 이란 단어에 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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