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4, 2013

위대한 생존자들

제목: 위대한 생존자들(Survivors)
지은이: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
옮긴이: 이한음
출판사: 까치글방
발행일: 2012년 11월 5일 (원저 2011년 9월 1일)

생물학 서적. 원래 제목은 Survivors인데 어디서 갑자기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튀어나왔을까. Survivors는 어떻게든, 보통은 힘들게, 살아남은 자라는 인상을 주는데 반해 '위대한 생존자들'은 뭔가 멋지고 유능하게 살아남았을 듯한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전자가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수식한다고 여겨진다.
15쪽에 지질시대 연대표가 나온다.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제3기, 제4기. 이 표가 실제 지속 시간 길이의 척도로 표시된 것이 있으면 좋겠다. 불행히도 그냥 하나의 구분 시대를 한 줄로 표시한 표다. 그렇지만 무척 중요하다.
그 표에는 대량멸종이 2건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는 대략 5번의 주요한 대량 멸종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오르도비스기 말 생물종의 85% 멸종, 데본기 말 70%, 페름기 말 95%, 트라이아스기 말 80%, 백악기 말 75% 정도로 멸종이 있었단다. 거기에 더해서 현생인류의 환경 파괴로 인한 6차 대멸종이 진행중이라는 주장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그렇게 험한 세월을 견뎌 내고 살아남은 생물들이다. 적도 부근까지 빙하가 펼쳐지도록 지구가 얼어붙었던 시절도 살아남고, 반대로 바닷물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도록 더워진 시절에도 살아남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 나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도 견뎌 낼 자신이 없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생물은 좀 생소한 '투구게'. 책 가운데 원색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지만, 본문에서는 딱히 어떤 사진을 참고하라는 이야기가 없어서, 한참 뒤에야 사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나마 개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물일 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어서 '발톱벌레'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역시나 생소하다. 학명이 Peripatus novae-zealandiae 란다.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평생 한 번도 실물은 마주친 적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의 챕터들은 딱히 생물 이름을 제목으로 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더 생소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원생대의 최상층에 최근 '에디아카라기' 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과 함께 '스트로마톨라이트' 라는 생물 또는 생물군이 등장하고, 특이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세균들, 무척추동물, 식물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설명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배인지, 언급하는 동물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 등은 편안한 수필처럼 쓰여져 있다.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낭만적인 소설을 읽는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이내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비단조개과의 솔레미아(Solemya, 본문 175쪽) 라던지,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플레우로토마리아(Pleurotomaria, 본문 177쪽) 등의 난감한 이름일 뿐이다.
이 책은 수억 년을 견뎌낸 생물종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추측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근거로 그 생물종들이 오랜 세월 살아남았다고 추정되는 지에 대한 설명이 주된 내용이다.
전반적으로는 과학 수필 같은 느낌. 특정 지식을 전달하거나, 특정한 주장을 하려는 글이 아니고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는 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난감한 이름의 주인공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는 점만 빼면 아무 생각 없이 지구 역사 수억 년을 한 번쯤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 과학을 이렇게 서술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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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pril 03, 2013

진월담 월희

제목: 진월담 월희 (真月譚 月姫)
원작: Type-Moon
그림: 사사키 쇼넨 (佐々木少年)
옮긴이: 서현아
출판사: 학산문화사
발행일: 2011년 5월 완간(원저 2010년 3월)

일본 만화. 처음엔 게임으로 등장한 작품이란다. 그것도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통칭 '미연시'라 불리는 장르.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이런 데 써도 되는 지는 항상 의문이다.) 그런데, 워낙 작품성이 뛰어나 대박나고 많은 사랑을 받은 끝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만화로도 나왔다.
이 작품의 제작사는 타입 문(Type-Moon) 인데, 기업이 되기 이전, 동인 서클이던 시절의 작품이란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작가를 한 명으로 꼭 꼬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국어판에는 원작 TYPE-MOON/TSUKIHIME PROJECT, 그림 sasakishonen 이라고 되어 있다.
일본 만화의 번역판을 볼 때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원작자의 이름을 영문으로만 표기하는 것이다. 한글로도 쓰지 않고, 일본어로도 쓰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독자가 이 작품이 일본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 주기를 바라는 것도 같다. 게다가 여기서는 영어 표기에서의 기본적 규칙 중 하나인, '인명 첫글자는 대문자로 쓴다' 는 점까지 무시하고 전체 소문자로 표기. 이런 점에 힘입었는지, 인터넷 검색에서 월희에 대한 정보는 적지 않은데, 사사키 쇼넨을 함께 언급한다거나 설명하는 자료는 지극히 드물다. 위에 적은 일본어 표기도 맞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
원작이 '미연시' 혹은 에로게임이었던 탓에 주인공 이외의 남자는 극히 드물다. 엑스트라거나 아니면 적이거나. 주변에는 다양한 속성의 여자들만 득실댄다. 만화책에서는 여주인공인 알퀘이드, 여동생, 학교 선배, 좀 뜬금없다 싶은 메이드 등등. - 원래 그런 대 저택에는 나이 지긋한 집사 영감님이 계셔야 할 듯 한데, 메이드만 달랑 두 명 있다!
스토리는 상당히 독창적이다. 일본풍 흡혈귀 이야기.
주인공 토오노 시키는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낙서같은 선이 온 세상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본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들이 바로 '죽음' 이다. 어떤 이유에선가 죽음 그 자체를 형상화 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
평범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던 시키 앞에 어느날 어떤 여자가 나타난다. 시키는 알 수 없는 살인 충동에 휘말려 그 여자를 토막내 살해하한다. 그리고는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여주인공인 알퀘이드고, 게다가 흡혈귀이고......
흡혈귀의 종류, 알퀘이드가 이 세상에 나타난 목적, 둘 사이의 감정, 과거의 연결 고리 등이 무척 분주하게 전개된다. 만화에서는 당연히 알퀘이드와 시키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인데, 원작인 게임에서는 위에 언급된 각종 다른 여주인공과의 이야기도 따로 있단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명불허전'. 꽤나 재미있다.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감정이 흐르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흔해 빠진 미연시처럼 하악대는 것이 전부가 아닌 복잡하고 깊은 감정. 그것이 어쩌면 가장 큰 장점일 것 같다.
인터넷에서 월희, 혹은 진월담 월희 를 검색해 보면 더 많은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분명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사랑할 만한 작품이다. 흡혈귀, 피, 이런 거에 질색을 한다거나, 연애질이라면 도저히 눈 뜨고 봐 주지 못하겠다는 사람 외에는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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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pril 01, 2013

생각의 탄생

제목: 생각의 탄생 (Spark of Genius)
지은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Robert Root-Bernstein, Michele Root-Bernstein)
옮긴이: 박종성
출판사: 에코의서재
발행일: 2007년 5월 2일 (원저 2001년 8월 9일)

저자가 부부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생리학과 교수, 미셸 루트번스타인은 역사와 창작을 가르친다고 소개되어 있다. 매끈한 편집 덕분인지 매끈한 번역 덕분인지 두 사람이 쓴 글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지를 알려주고 있다. 흔히 '창의성' 이라고 하면 예술 분야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 못지 않게 과학이나 수학 분야에서도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가지 생각도구 라고 제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관찰
2. 형상화
3. 추상화
4. 패턴인식
5. 패턴형성
6. 유추
7. 몸으로 생각하기
8. 감정이입
9. 차원적 사고
10. 모형 만들기
11. 놀이
12. 변형
13. 통합
어떤 부분들은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진다. 형상화, 추상화, 유추, 모형 만들기 등은 차이가 무엇인지 꼭 꼬집어 말하기 애매할 정도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패턴'의 하나로 제시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각 장은 해당하는 생각 도구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관련 있는 일화들을 나열하고 있다. 주로 과학과 예술 분야의 일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을 접하게 되고, 역시 정말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을 접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서 '어딘가에서 들어 본 적 있는 인물' 정도를 넘어 어떤 업적이 있는 지 알고 있을 정도라면 상당한 교양인일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과학에도 예술적 사고가 필요하고, 예술에도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고, 결론도 뭔가를 잘 하려면 전인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다 배워야 한다는 식이다. - 삼각함수를 배우기도 버거운 수험생들이 탄젠트의 색깔을 상상한다거나, 탄젠트를 적분할 때 들리는 소리를 느끼는 것이 과연 가능할 지는 잘 모르겠다.
전에 읽었던 '아티스트 웨이' 라는 상당히 불만스러웠던 책에서 기대했던 내용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 뭔가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내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
이 책은 그런 가능성을 다각도로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엄밀하게 체계적인 방법론으로서가 아니라, 이러한 것도 있다, 이런 관점도 있다 정도로 보여주고 있는 점이 좀 아쉽다. 그런데, '창의'라는 것에 정해진 방법 같은 것은 원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인물들은 인류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분명하니, 좀 생소한 이름이 보인다 싶으면 어느 정도 추가적인 조사를 해 보는 것도 정말 좋겠다. 책 뒷부분에 꽤 많은 분량의 참고 문헌도 실려 있다. 당연히 영문.
과학 분야와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꼭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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