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6, 2022

레스

제목: 레스 (Less)
지은이: 앤드루 숀 그리어 (Andrew Sean Greer)
옮긴이: 강동혁
출판사: 은행나무
발행일: 2019년 4월 1일 (원저: 2017년 7월 18일)

마지막으로 글을 올렸던 2014년 12월 이후 대략 8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대부분은 망각의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려, 더이상 어디에서도 기억되지 않고 회상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을 거다. 굳이 찾고 싶다면 고고학적 기법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것들을 담기 위한 장소는 아니니까……
이런 저런 종이책과 전자책을 읽기는 했지만 따로 적지 못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검색엔진이나 가끔씩 방문하는 여기에 굳이 무언가 남길 만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고, 다른 편으로는 아마도 한가하게 사유하고 되새김질 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다. - 둘 다 핑계일 뿐인 것이, 다른 어딘가에는 훨씬 쓸 모 없는 무언가를 잔뜩 쌓기도 했고, 훨씬 여유로운 무언가에 시간을 쏟기도 했었다. 8년이란, “취미”의 영역에서는 짧다고 보기 어려운 시간이다.
이번에 잡은 책은 오랜만에 종이책이었다. 바로 직전 한동안은 전자책을 주로 읽었다. 회사에서 복지의 일환으로 상당한 분량의 전자책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해 준 덕분에,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가한 책읽기는 주로 그쪽을 이용하게 된 덕분이었다. 그러다가, 사실 몇 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종이책을 손에 잡으니 예전에는 못 느꼈던 것들을 새롭게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다.
가장 먼저, 크고 무겁다. 전자책은 휴대폰 안에 몇 권이 들어있던지 무게가 달라지지 않는다. 두툼한, 물리적인 두께가 없으니 두툼하다기 보다 내용이 많은, 책을 열두 권쯤 담아가지고 다니는 일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종이 책은, 특히 물리적으로 두툼한 종이 책은, 한 권만 가방에 담아도 그 무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마지막으로 읽었던 곳을 찾는 일이 번거롭다. 책갈피로 쓸 수 있는 끈을 - 얘도 분명 이름이 있기는 할 텐데…… - 미리 달고 있는 책이 아니라면 무언가 따로 준비를 해야 하며, 읽던 부분을 확실히 표시해 두지 않고 책을 덮었다면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다시 찾는 일은 은근히 귀찮다. 전자책은 항상 내가 읽던 마지막 위치에서 다시 열린다. 심지어는 휴대폰에서 읽다가 컴퓨터에서 같은 책을 열어도 마지막 읽던 위치가 표시되는 기적같은 신기한 기능까지 있다.
그리고 또, 인용 기능이 있다. 인상깊은 구절을 보았다면 그것을 어딘가에 기록해 두고 싶은데, 종이책은 이것이 은근히 번거롭다. 책에 밑줄을 그어 봐야 다시 찾으려면 책 전체를 뒤져야 하고, 책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싫어하는 나같은 경우는 다른 매체에 옮겨야 만족스러운데, 이때를 위해서 컴퓨터 앞에서 책을 읽는다면 도대체 뭐하러 종이책을 읽는단 말인가! 하지만 전자책은 간단히 몇 문장 복사해서 다른데 붙여 넣는 데에는 거의 제약이 없고, “형광펜” 기능으로 색칠을 해 두면 나중에 색칠한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따로 확인할 수도 있다. 게다가 종이책에 밑줄을 긋는 것과는 달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내 형광펜 작업이 다른 사람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형광펜이 내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서일 것 같다.
이런 몇 가지 같잖은 이유로, 불과 몇 개월 만에 종이책을 읽는 것이 엄청나게 불편하게 바뀌어 버렸다고 느끼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항상 어렵다. 책에 대해 어디까지 써도 되는 걸까? 극적인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을 미리 써 버리면 안된다는 점은 거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걸로 보이지만 과연 진짜 그런 걸까? 햄릿이나 리어왕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극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야기 하는 것이 무례한 일일까? 원작은 출판된 지 5 년 정도 지났고, 한글판은 출판된 지 3년 정도 지난 이 책에 대해서 나는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또는 어디까지가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에 속할까? 검열 할 것 다 하고 나면 뭐가 남아 있을까?
그래도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에 나와 있는 내용까지는 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간추려 보자면, 이 책은 여행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가다. 그리고 동성애자. 헤어진 연인의 청첩장을 받는다. 정말 가기 싫어서 핑계를 찾는다. 그래, 외국으로 떠나자. 그렇게 훌쩍 세계 여행을 떠나간다.
썩 잘 준비되지 않은 어수선한 여행길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심경처럼 다소간 두서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한 조각씩 꿰어 맞추다 보면, 왜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갈 것도 같지만, 역시 여기에는 큰 벽이 있다.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동성 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대체적으로 가능한 나라다. 나로서는 아직 구경도 한 번 못 해본 행사라서 어떤 느낌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도망치려고 하는 건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또, 역시 미국인이다. 엄청 잘나가는 작가는 아닌 것으로 묘사되지만, 나름 해외에서 번역 출판된 작품도 있는 중견 작가다. 그래서인지 경제적 고민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몇 개월에 걸쳐 멕시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모로코, 인도, 일본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계획은 소득 수준이 세계 평균 근처에 있는 사람이 선뜻 떠올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상위 20% 부근에서도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인공의 처지에 공감보다 거부감이 더 들었다. 게다가 영어 외에는 독일어를 서툴게 할 뿐, 딱히 다른 언어를 쓰지 않는 것 같은데도 일단 떠날 수 있다. 세계 어디에나 영어를 쓰는 사람은 있을 테니……
더군다나 이 사람은 연애사도 딱히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났고, 천재라고 생각하는 존경할 만한 사람과도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지냈고, 반대로 훨씬 젊은 친구와도 깊은 관계로 지내 보고……
그렇게 세상 부러운 인물이 약간의 감정적 어려움에 방황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가소로운 듯한 측은함이 느껴졌다. 공업수학과 이산수학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다항식의 미분을 어려워하는 고등학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 너도 너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 하지만, 테일러 급수와 푸리에 변환 같은 걸 해야 하는 날도 온단다.
이런 점은 작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는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8쪽
“백인 중년 남자예요?”
“네.”
“백인 중년 미국 남자가 백인 중년 미국인의 슬픔을 품고 걸어 다닌다?”
“세상에, 그런 것 같네요.”
“아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그런 사람은 공감하기가 약간 어려워.”

더군다나, 여자와 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하고 게이와 함께 살다가, 늙고 병들자 다시 전처에게 돌아가는 멋진 남자도 나온다. 그 여자분은 도대체 어떤 정신 수양을 했을까? 어쩌면 그분의 이야기가 이 주인공 - 나이 50에도 어리광 같은 투정을 부리며 세계를 떠도는 남자 - 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젊은, 내지는 어린 남자와 사는 것이 화가 나지는 않았을까? 여자가 아니라서 괜찮은 걸까? 그동안에도 친구처럼 지냈을까? 그리워했을까?
이런 이야기까지 했던 여자분인데……

89쪽
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게 스물다섯 살짜리가 주식시장 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님 세금이나. 아님 빌어먹을, 부동산이나! 마흔 살이 되면 그것밖에 할 얘기가 없거든. 부동산이라니! 재금융 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스물다섯 살짜리는 누구든지 끌어내서 총살해야 한다니까.

무협지에서 등장하는 은둔 고수라거나, 로맨스 소설에서 등장하는 나만 바라보는 재벌가 외아들 이라거나, 그런 장르적 소망을 담은 가상의 존재에 이것 저것 따지는 것이 오히려 더 어이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딱 생각했던 그대로의 결말이어서 아쉬웠다” 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아쉬웠다. 작가가 세심하게 깔아 놓은 복선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주변에서 한 번도 비슷한 일을 본 적이 없다거나, 아니면 가슴 깊은 곳에서 부정하고 싶었다거나……

187쪽
“거의 쉰 살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이제야 겨우 젊게 사는 방법을 안 것 같은 기분인데.”
“맞아요! 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같다니까요. 커피를 마시려면, 술을 마시려면,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제야 알아냈는데, 근데 떠나야 하는 거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고.”

책은 제법 재미있었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세계를 무대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고민을 풀어 놓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주인공이 나보다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나보다 너무나 잘 살고 있다 보니 공감이나 연민보다 훨씬 강하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겠지?

사족: 여러 번 나온 “바보 사랑꾼” 이라는 말의 원문이 뭐였는지 궁금하다. “stupid lover” 같은 느낌은 아닐 것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