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28, 2012



제목: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The zombie survival guide)
지은이: 맥스 브룩스 (Max Brooks)
옮긴이: 장성주
출판사: 황금가지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원저 2004년)

이 책을 어떤 장르로 봐야 할까? 일단 논설문이나 설명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허황되지고, 실용서로 봐 주기에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 하지만, 뭔가 많은 연구 끝에 나온 실용서 같은 형식의 이 책을 '소설'로 선뜻 분류하기에는 역시 뭔가 이상하다. (우리 회사 도서관에는 '문학' 으로 분류되어 있다!)
제목 그대로,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무척 학술적인 분위기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좀비란 무엇인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에서 시작해서 좀비를 상대할 때에는 어떤 무기, 어떤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지, 좀비로부터 탈출할 때와 좀비를 섬멸할 때는 어떻게 달리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좀비를 '솔라눔'이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뇌세포가 파괴, 변형되어 산소에 의존하지 않고 생존하게 된 특이한 생명체로 정의하고 있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아는 지식 체계에 비춰 보면 저런 생명체가 실존할 가능성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거대 천체가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멸망하게 될 확률보다 별로 높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무척 진지하게, 지나치리만큼 진지하게, 좀비의 위험과 대처방안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읽다 보면 '오~ 그럴싸 한데'의 기분을 넘어서 '으악~ 이거 진짜 아냐?' 라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하다.
마지막 챕터는 '기록에 남은 좀비 공격 사례' 이다. 역사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 좀비의 발생으로 판단될 만한 사례들을 연대순으로 실었다. 정말 기괴하고 섬찟하고 그럴싸한 내용들. 좀비가 기원전 삼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출몰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영화, 게임 등으로 좀비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이 있고, 그럴싸한 말장난을 재미있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새로운 장르의 문학 내지는 논문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좀비물 치고는 끔찍하거나 잔인한 장면도 거의 안 나온다.

내가 분명히 위에 실제 좀비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대천체에 의한 인류 멸망 가능성보다 높지 않다고까지 했는데도,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좀비 사태가 사실인지 아닌지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책 맨 뒤의 다음 경고를 신중히 음미해 보시길.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역사적, 기술적, 사회적)들은 저자의 최초 출간본을 그대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내용상의 사실 여부는 본 출판사에서 확인해 줄 수 없다.

=^.^=

Tuesday, February 21, 2012



제목: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Why people believe weird things)
지은이: 마이클 셔머 (Michael Shermer)
옮긴이: 류운
출판사: 바다출판사
발행일: 2007년 11월 12일 (원저 1997년)

이번에는 사이비 과학에 관한 책이다.

사람들은 참 어이없는 것들을 믿곤 한다.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된다던가, 태어난 시점에서 별자리의 위치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된다던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던가...... 그런 황당한 것들을 그냥 '그럴 듯 하다'고 믿는 정도를 넘어서 삶의 이정표로 삼기까지 한다. - 종교 라는 것들은 모두 합리성과는 거리가 무척 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런 것들을 믿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 과학은 주는 답은 대충 이렇다. 사람은 자연에서 관찰된 사실들에서 뭔가 원리를 추론하는 사고방식을 진화시켰고, 그 방식이 생존에 유리했다. 그래서 지금도 관찰된 사실들을 어떻게든 연결 지어 모종의 가상 원리를 만들어 내곤 한다. 그 가상 원리가 딱히 생존과 번식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믿게 되었는 지에 대한 설명 보다는 흔히 믿어지곤 하는 어이 없는 사실들을 나열하고 반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마녀사냥, 창조론,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정 등. - 홀로코스트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방법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검증하고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지식을 쌓는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은 흔히 '회의주의'라고 번역된다. 왠지 삶에 회의를 느낀다는 말과 연상되며 부정적인 느낌인 회의주의 보다는 합리주의, 이성주의 등의 다른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1987년까지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과학으로서 가르치던 나라이고, 1991년의 여론조사에서 인류가 하등한 생물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9% 정도였단다.
이런 황당한 불합리성이 조금씩이라도 시정되어 갈까? 왠지 아닌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

Tuesday, February 07, 2012


제목: 흑산(黑山)
지은이: 김훈
출판사: 도서출판 학고재
발행일: 2011년 10월 20일

참 암담한 소설이다. 매 맞으러 가는 걸로 시작한다. 어떻게 맞아야 덜 아프다는 민간요법. 곤장에 대한 공포. 그런 어두운 색채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막연히 어린 시절 선생님한테 엉덩이를 맞던 기억보다 조금 더 아픈 매가 아닐까 상상했던 곤장은 훨씬 강렬한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

매는 말로 전할 수 없었고, 전해 받을 수가 없으며 매와 매 사이를 글이나 생각으로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는 책이 아니라 밥에 가까웠다. (13쪽)
매와 매 사이에서 세상이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13쪽)
허벅지에 닿은 매가 볼기를 터뜨리면서 엉치뼈를 때려서 척추가 비틀렸다. 매는 박한녀의 척추를 따라서 머리로 올라갔다. 첫 매에 박한녀의 머리와 사지가 늘어졌다. 터진 볼기에서 살점이 흩어지고 피가 튀었다. (238쪽)

1800년경. 역사적으로 조선 후기의 이야기다. 정권은 부패해서 백성들의 곤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던 시절.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 거기에 위안을 삼으려는 백성들. 그 꼴을 보아 넘길 수 없는 정권. 그래서 줄줄이 천주교를 믿은 죄로 잡혀가고, 죽어나가는 그런 이야기다.

정씨 가문에서 약종은 참수. 약전, 약용은 장기유배. 그중 흑산도로 유배 가는 정약전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흑산도의 삶은 이런 모습이었다.

논이 없어서 물고기를 잡아 곡식과 바꾸는 섬에 세금과 신역이 쌓여서 땅에 코를 박은 백성들은 주려 있었다. 섬의 땅은 훈련도감의 둔전으로 흑산진이 지세를 거두어 본감으로 보냈다. 배와 미역에 부과하는 세금은 흑산진의 본영인 우수영으로 올라갔고 물고기 세금은 목민 관할인 나주목으로 올라갔다. 섬에 닥나무가 자생해서 백성들은 종이를 만들어 도감에 올려 보내야 했는데, 할당량 일천육백 속을 채우지 못하면 돈으로 걷어 갔다. 사람마다 몫이 정해져서 어린아이까지 지역이 매겨졌다. 보리밭과 대밭에는 소출에 관계없이 면적에 따라 세금을 매겨서 우수영에서 가져갔다. 보리밭 두렁에 심은 콩은 모종 수를 헤아려 세금을 매겨서 흑산진에서 가져갔는데, 본영인 우수영도 모르게 흑산 별장이 정한 세금이었다.
공물을 실은 배가 떠날 때, 선박 운항비와 선원들의 수고비를 흑산 백성들이 내야 했고 육지에서 건너온 관원들은 월해채를 뜯어갔다. 태풍 때마다 표류해서 밀려오는 상국 배의 선원들을 먹이고 재우고 양식을 주어서 뒤탈이 없도록 돌려보내는 일도 섬 백성들의 몫이었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유배 죄인들을 받아서 기약 없는 세월을 먹이고 거두는 일도 섬의 몫이었다. (88-89쪽)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어이 없이 죽어나가고, 정약전의 사위인 황사영이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맺는 이 소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고 암울하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338쪽)

유배되어 딱히 할 일도 없는 서울 양반은 이렇게 흑산도에 자산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남는 시간 물고기를 들여다 보며 '자산어보' 라는 책을 썼단다. 참 장하기도 하셔라.

이와 같은 암담한 상황에서 나라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가장 근접한 답이 '자살'이 아닐까 싶은데......

책에서는 천주교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없이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은 천주교를 진리와 구원의 빛으로 받아들인다. 상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고등어 한 마리에까지 세금을 매겨 뜯어가는 마당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얘기는 사뭇 솔깃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천주교가 어떤 종교인가? 신의 사랑 이라는 명분으로 죽여 없앤 사람의 수가 이 세상 그 어느 질병으로 죽은 사람보다도 많다는 종교. 나와 다른 이교도는 끝까지 죽여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는 종교. 약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패가 만연한 종교. 게다가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 부역하여, 선교라는 이름으로 약소국 침략에 선봉으로 나서는 종교가 아닌가! 자기네가 힘이 없을 때엔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할 듯 세력을 규합하지만 한 줌이라도 힘을 갖게 되면 신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주력하는 그런 종교인데......

현실이 암담하다지만 천주교에 빠진 사람들은 다분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도망 다니다가 붙잡히는 황사영 같은 경우에는 하느니의 이름으로 거대한 군함을 끌고 와서 조선을 박살 내 주기를 바라는 밀서를 쓰기까지 한다. 물론 국민들 등골을 휘게 하는 부패한 조선 말기 정권을 비호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내 기분 같아도 싹 죽여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어딘가 한참 잘못 된 느낌이 든다. - 종교란 참 편리한 도구구나. 잘 물들여 놓으면 이렇게 나라를 통째로 들어다 바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사람까지 생기고......

천주교, 또는 기독교가 (밖에서 보기엔 그게 그건데......) 빛이고 구원이고 영생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 책을 정말 스릴과 감동이 넘치는 역사소설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그 종교는 또 하나의 사회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두 배로 암담하고 역겨운 상황에서 헤어 날 수 없는 책이다.

암담하지만, 민주주의와 국민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하지만 너무나 끔찍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가급적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스타크래프트 보다 수십 배는 더 잔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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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01, 2012



제목: 다윈 지능 (Darwinian Intelligence)
지은이: 최재천
출판사: 사이언스 북스
발행일: 2012년 1월 2일

우리나라는 현재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기독교 근본주의적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 공직에 앉은 사람이 덜렁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해 버리기도 하고, 모든 도로 정보에서 불교 사찰을 일제 삭제하기도 하고, 주요 공직에 목회자를 대거 채용하는 등 뭔가 제정신이 아닌 듯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공직자를 목회자로 채용하기도 하는 듯하다. '고문의 대가'를 목회자로 채용했다가 사회 문제가 되니 슬그머니 취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덕분인지 '진화론'을 그냥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 중의 하나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조물주 라는 존재가 진흙을 빚어 숨결을 불어넣으니 인간이 되었다는 얘기가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누적된 DNA 상의 변화에 따라 현생인류로 진화되어 왔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정도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 확실히 더 간단하고 쉽기는 해 보인다. '조물주' 라는 joker 내지는 wildcard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이 책은 진화론에 관해서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을 법한 오해들에 대한 설명, 진화론과 관계된 연구들, 거기 따른 일화들 등을 편안하게 나열하고 있다. 과학적인 책이라기보다 과학을 소재로 한 수필 같은 느낌의 글이 대부분이다.

책의 여러 부분에서 저자는 왠지 종교와 과학의 화해 내지는 융합을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왜? 종교가 과학을 탄압한 적은 꽤 있지만 과학이 종교를 탄압한 적은 내가 알기로는 단 한 번도 없다. 종교는 과학에 대해 쉬지 않고 이러쿵 저러쿵 딴지를 거는 반면에 과학은 종교에 대해 '내 분야가 아니므로 할 말이 없다' 라고 단호히 선을 긋는 자세를 보여 왔다. (사회과학 쪽에서는 종교에 관해 연구를 하지만, 옳다던지 그르다던지 등의 주관적 평가를 내리는 일은 경게하고 있고, 특정 종교 행위에 대해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이렇게 긴 세월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짓밟히고 살았는데도 왜 종교를 직설적으로 비난하지 못하는 걸까? 용서는 마치 종교의 전매 특허처럼 여겨지는데, 실제로는 과학이 종교를 용서하고 있는 이 어이없는 상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진화론이 아직 불완전한 이론으로, 창조론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한 번쯤 읽어 봐야 할 책이다. (도대체 왜 창조'론' 일까? 창조'설화'가 적절한 표현 아닐까?) 그밖에 평소에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힐 만한 내용이 꽤 있다. 다만 그다지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고, 참고 문헌 목록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제법 많은 책들이 언급되고 있기는 한데, 만 따로 모아서 안내해 주는 정도의 친절함이 부족한 것이 좀 아쉽다. (목록이 있다고 내가 책을 더 찾아 봤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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