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20, 2009


제목: 1Q84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옮긴이: 양윤옥
출판사: 문학동네
초판 발행: 2009년 9월 8일 (원작은 2009년 5월)

아직 발행된 지 한 달 남짓 밖에 안 된 따끈한 단행본을 읽었다. 무거운 소설은 피곤해 하고, 가벼운 소설은 경멸하는 나같은 사람이, 갑자기 환타지도 아닌 신간 소설을 읽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지만, 이번엔 누나가 책을 구입한 김에 본전 생각에 읽었다.

주인공은 두 명. 아오마메 라는 여자, 그리고 덴고 라는 남자. 둘의 이야기가 한 장씩 번갈아 가며 나오는 구조이다. 그리고 처음엔 전혀 관계 없었던 둘의 이야기가 묘한 교차점을 지나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전개 방식이다.

1979년 문단에 데뷔해서 30년째 '잘나가는' 작가 인생을 살고 있는 분 답게 이야기는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하지만 빨려 들어간 곳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허무한 시공간,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1Q84 년의 세계이다. 이야기의 구성상 꼭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이 팔리는 데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적당히 에로틱한 이야기들이 있고, 뭔가 사회적, 정치적 의견도 담겨 있는 것 같다. 명확히 읽어내지는 못하겠다. 게다가 젊은 여성층을 위한 배려인지, 운명적인 사랑과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작품의 큰 테마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는 제목 1Q84는 1984년의 평행우주 비슷한 시공간이다. 주인공 아오마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딘지 이상함을 느끼고, 이전에 살던 1984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럼 어디일까? 여기서 Question mark 의 Q를 취해 만든 연도이다. 왜 하필 1Q84 일까? 198Q 같은 것이 아니고?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은 없거나 못찾았다.

처음에 사실적인 스릴러 물처럼 전개되던 이야기는 점점 환타지풍이 되어 간다. '리틀 피플'이 '공기 번데기' 를 창조하고, '도터'가 생성되며, '퍼시버'와 '리시버' 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다. 두 개의 달에서 바로 '브리타니아(*주)' 를 떠올리는 내겐, 금방 '옵저버(*주)'와 '템플러(*주)' 라도 등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시공간은 그냥 갑자기 [끝] 하고 끝난다.

좋게 말하자면 뭔가 알 듯 말 듯 여운이 남는 거고, 안좋게 말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늘어 놓던 이야기가 더이상 감당이 안되니 툭 잘라내어 끝내 버린 느낌.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그래서 깔끔하게 펜을 놓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독자로서는 아직 궁금한 게 너무 많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 허무한 엔딩은 이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누가 얘기해 줬다.

적어도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소 허전한 엔딩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 허무함도 작가가 부실하여 내용이 텅 비어버린 허무함은 아니다. 뭔가 있긴 있지만 작가가 '그건 호락호락 보여줄 수 없지롱' 하고 완강히 거부해서, 따질 수도 물을 수도 없는 부류의 허무함에 가깝다.

그냥 재미 만으로도 그럭 저럭 책 값은 한다. (책이 비싸서, 좀 모자라다 느낄 수도 있다. -_-;) 더불어 알 듯 말 듯한 지적 유희와, '하루키를 읽는다'는 허영심의 충족, 베스트 셀러 내지는 문제작을 섭렵하는 편집증적 만족감까지 보태진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주:
브리타니아(Britannia) 유명 롤 플레잉 게임 Ultima 의 배경이 되는 공간. 달이 2개이다.
옵저버(Observer) 유명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Starcraft의 유닛 중 하나.
템플러(Templar) 유명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Starcraft의 유닛. Dark Templar 와 High Templar 두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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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06, 2009


제목: 위대한 개츠비 (원제: The Great Gatsby)
지은이: F. 스콧 피츠제럴드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옮긴이: 방대수
출판사: 책만드는집
초판: 2001년 8월 27일 (원작은 1925년 4월 10일)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널리 알려진 책이다. 실제로 읽어 본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쯤 읽기는 했었다고 착각하고 있기까지 하다는 책이다. 나 역시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안 읽었던가 헷갈렸고, 펼쳐 보고 나서야 처음 읽는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아니면 말고. -_-;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딴지일보의 소개글이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아래 링크가 얼마 동안이나 살아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딴지일보의 기사 데이터베이스에는 꽤 오래 남아 있겠지......

http://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71&article_id=4735

관찰자 시점을 취해, 사건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화자는 어찌 보면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무관심해 보이거나 귀찮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비쳐지는 인물들은 그다지 멋지거나 위대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의 공간적 배경은 이역 만리 타국이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쌩쌩 날아도 열두 시간 남짓 날아가야 갈 수 있는 미국이다. 게다가 시간적 배경 역시 1925년 이전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조선시대 구중궁궐의 스캔들보다 훨씬 더 생소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비록 전통적인 소설 답게, 상당 부분 공들인 묘사가 이어지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내 입장에선 그 속 뜻을 알 수도 없고,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딴지일보의 해설을 읽고, 줄거리를 숙지한 상태에서 다시 두 번을 정독했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생소하고, 그래서 난해하고, 그래서 지루하고, 그래서 재미 같은 것을 느끼기는 상당히 힘들다. 다만 제목과는 달리 '개츠비' 라는 인물이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은 들었다. 오히려 딴지일보의 표현대로 찌질하다는 표현이 훨씬 적절한 것 같다.

어째서 이렇게 생소하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우리들에게 '필독서' 비슷한 이름으로 강요되는 것일까? 2009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1925년경의 미국 사회상을 이 책을 이해할 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알 필요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이 책의 교훈이 100년의 시간과 지구 반바퀴의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까지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생소하며, 이해한다고 해도 그 교훈 내지는 의미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오락거리로도, 교훈으로도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이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편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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