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위대한 개츠비 (원제: The Great Gatsby)
지은이: F. 스콧 피츠제럴드 (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널리 알려진 책이다. 실제로 읽어 본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쯤 읽기는 했었다고 착각하고 있기까지 하다는 책이다. 나 역시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안 읽었던가 헷갈렸고, 펼쳐 보고 나서야 처음 읽는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아니면 말고. -_-;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딴지일보의 소개글이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아래 링크가 얼마 동안이나 살아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딴지일보의 기사 데이터베이스에는 꽤 오래 남아 있겠지......
http://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71&article_id=4735
관찰자 시점을 취해, 사건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화자는 어찌 보면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무관심해 보이거나 귀찮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비쳐지는 인물들은 그다지 멋지거나 위대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의 공간적 배경은 이역 만리 타국이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쌩쌩 날아도 열두 시간 남짓 날아가야 갈 수 있는 미국이다. 게다가 시간적 배경 역시 1925년 이전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조선시대 구중궁궐의 스캔들보다 훨씬 더 생소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비록 전통적인 소설 답게, 상당 부분 공들인 묘사가 이어지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내 입장에선 그 속 뜻을 알 수도 없고,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딴지일보의 해설을 읽고, 줄거리를 숙지한 상태에서 다시 두 번을 정독했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생소하고, 그래서 난해하고, 그래서 지루하고, 그래서 재미 같은 것을 느끼기는 상당히 힘들다. 다만 제목과는 달리 '개츠비' 라는 인물이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은 들었다. 오히려 딴지일보의 표현대로 찌질하다는 표현이 훨씬 적절한 것 같다.
어째서 이렇게 생소하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우리들에게 '필독서' 비슷한 이름으로 강요되는 것일까? 2009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1925년경의 미국 사회상을 이 책을 이해할 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알 필요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이 책의 교훈이 100년의 시간과 지구 반바퀴의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까지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생소하며, 이해한다고 해도 그 교훈 내지는 의미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오락거리로도, 교훈으로도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이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편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지은이: F. 스콧 피츠제럴드 (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널리 알려진 책이다. 실제로 읽어 본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쯤 읽기는 했었다고 착각하고 있기까지 하다는 책이다. 나 역시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안 읽었던가 헷갈렸고, 펼쳐 보고 나서야 처음 읽는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아니면 말고. -_-;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딴지일보의 소개글이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아래 링크가 얼마 동안이나 살아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딴지일보의 기사 데이터베이스에는 꽤 오래 남아 있겠지......
http://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71&article_id=4735
관찰자 시점을 취해, 사건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화자는 어찌 보면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무관심해 보이거나 귀찮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비쳐지는 인물들은 그다지 멋지거나 위대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의 공간적 배경은 이역 만리 타국이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쌩쌩 날아도 열두 시간 남짓 날아가야 갈 수 있는 미국이다. 게다가 시간적 배경 역시 1925년 이전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조선시대 구중궁궐의 스캔들보다 훨씬 더 생소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비록 전통적인 소설 답게, 상당 부분 공들인 묘사가 이어지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내 입장에선 그 속 뜻을 알 수도 없고,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딴지일보의 해설을 읽고, 줄거리를 숙지한 상태에서 다시 두 번을 정독했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생소하고, 그래서 난해하고, 그래서 지루하고, 그래서 재미 같은 것을 느끼기는 상당히 힘들다. 다만 제목과는 달리 '개츠비' 라는 인물이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은 들었다. 오히려 딴지일보의 표현대로 찌질하다는 표현이 훨씬 적절한 것 같다.
어째서 이렇게 생소하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우리들에게 '필독서' 비슷한 이름으로 강요되는 것일까? 2009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1925년경의 미국 사회상을 이 책을 이해할 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알 필요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이 책의 교훈이 100년의 시간과 지구 반바퀴의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까지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생소하며, 이해한다고 해도 그 교훈 내지는 의미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오락거리로도, 교훈으로도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이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편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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