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9, 2011


제목: 물소리 바람소리
지은이: 법정(法頂)
출판사: 샘터
발행일: 1판 1986년 10월 15일, 2판 2001년 8월 31일.

법정 스님이 쓰신 글 모음이다. 법정스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여기 있다.
법정스님
좀 더 자세한 소개는 여기
법정스님

지난번 심신을 우울하게 했던 '열하일기' 때문에, 이번엔 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했다. 나는 법정스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세간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인 만큼, 현학적인 불교 전문용어로 책을 채우진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원래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 아니고, 이런 저런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책 같다. 불행히도 책 자체에는 그런 설명이 전혀 없다. 그래서 좀 아쉽다.

글들은 주로 80년대 중반 쯤에 쓰여졌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즈음이다. 따라서 시사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면 현재와는 상당히 맞지 않는다. 대신, 선문답처럼 지나치게 관념적이지도 않고, 신문 사설처럼 현실적이지도 않다.

스님의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생각들을 조근 조근 펼쳐 보여주는 글들은 꼭 말랑말랑하고 편안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 머리 속에 너무 많은 번뇌가 담겨 있어서 스님의 글이 깊이 와 닿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너무도 먹어댄다' 라는 제목이었다. 대충 '작작 좀 쳐먹어' 라고 현세 인터넷 용어로 번역해도 무방할 만한데, 1986년의 글이다. 현재 2011년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먹어대고 있는데...... 게다가 나는 과체중과 비만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 중인데......

책 맨 뒤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물소리 바람소리>는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라 절판됩니다.
본 도서는 마지막 쇄 도서입니다.

스님이 입적하시고, 모 유력 정치인과의 '트러블'이 좀 있었다. 그밖에도 굳이 알 필요 없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알량한 '저작권' 과 관련해서 좀 있었다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은 스님의 저서 전체를 '절판'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단다.

불교에 대한 종교적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편안하게 정신적 휴가 처럼 읽을 수도 있는 책이다. 거기에 딱 한 가지만 더하자면,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
(그런데 왜 정작 나는 이런 책조차 편하게 읽지 못하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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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18, 2011


제목: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지은이: 고미숙
출판사: 그린비 출판사
발행일: 초판 2003년 3월 25일, 개정판 2004년 3월 25일

이번엔 한국의 '고전'에 도전해 보았다.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로, 유머와 위트가 넘쳤단다. 열하일기는 중국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는 조선 사행단의 비공식 인원으로서 연암 박지원이 '열하'라는 지역까지 갔다 오는 과정에서 적은 여러 글들을 모은 것이다. 좋게 말하면 철학적 수필이고, 편하게 얘기하자면 '잡문' 정도 된다.

저자는 학부에서는 독문학을 전공했고,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단다. 또 푸코, 들뢰즈/가타리 의 철학을 배우면서 인생 행로가 바뀌었단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조선 중기의 문학인 열하일기를 소개 내지는 평역 하면서 들뢰즈/가타리 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온다. 내 무식의 소치로 빵상 빵상과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저 단어가 조선 중기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과연 필요한 것일까?

필요성의 여부는 차치하고, 의미조차 불분명한 여러 철학 용어들도 많이 등장한다. 오죽하면 뒤에 주요 용어 해설이라는 부록까지 달았을까. 조선 중기 문학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주요 용어들이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기계(machine), 되기(영 becomming, 독 werden), 리좀(rhizome), 봉상스(bon sens), 아포리즘(aphorizm), 영토화/탈영토화/재영토화, 유목민(nomad)/유목적 능력, 주름(영 fold, 프 pli), 클리나멘(clinamen). 대략 이런 단어들. 열하일기를 설명하는 것보다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을 표현하고 있는 듯한 이 단어들은, 나름대로 깊은 철학적 의미가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안그래도 생소한 '열하일기'를 이해하는 데 '유목민' 이라는 단어를 '들뢰즈/가타리'식으로 이해한 개념을 들이대는 것은 '공돌이' 라고 분류되는 내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해가 되면 되었지.

비슷한 예를 들어 보자면, 요즘 잘 나가는 안드로이드 폰의 사용법을 묻는 사람에게 Object oriented programming의 개념을 떠들고 있는 꼴이랄까.

책의 구성은 대충 이렇다. 반 페이지 정도 열하일기의 번역문이 나온다. 그 다음 대략 세 페이지에 걸쳐서 이런 사족이 붙는다.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재밌지?'

워낙 검소하게 소개되는 열하일기 번역문에서 저자가 느꼈던 재미를 느끼기에는 내 지식이 너무나 짧다. 조선 중기의 사회, 문화에다가 연암 개인의 처지, 주변 등장인물의 성격까지 다 꿰고 있는 데다가, 거의 모든 단어를 빌어먹을 '들뢰즈/가타리' 식으로 재해석 해야만 느낄 수 있는 재미인지도 모르겠다.

대략 '재밌지?' 라고 요약될 수 있는 저자의 평 내지는 감상 역시 한두 번은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을 지 모르나, 책 한 권을 읽는 내내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차츰 짜증이 난다. 처음엔 나름 '대단한' 인물로 느껴지던 연암이 나중에는 급기야 '뭐야, 몰라, 짜증나' 정도로 바뀐다.

저자는 연암 박지원에 대해 굉장한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것은 '들뢰즈/가타리'를 비롯한 현학적인 단어들에 막혀서 독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열하일기'에 대해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고,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이 거의 몸에 배다시피 한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열하일기'를 알리는 데에도 '들뢰즈/가타리'를 알리는 데에도 부적절한, 그저 그런 감탄문의 끝없는 나열일 뿐인 것 같다.

나는 절대로 저런 책 쓰지 말아야겠다 라는 정도의 감상. 도대체 이 책이 어떻게 개정판 씩이나 내게 됐을까 라는 의문. 또, 처음부터 끝까지 남는 도대체 '들뢰즈/가타리'가 뭥미? 라는 의문.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책을 읽는 데 3주일이 넘게 걸린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고......

뱀발: 관광지에서 찍은 저자 사진은 왜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까? 차라리 관광지 소개 사이트의 사진을 가져오거나 지하철 무료신문에 나오는 헐벗은 여자 사진을 붙이는 게 나을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