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9, 2011


제목: 인공 낙원 -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
지은이: 정윤수
출판사: 궁리
발행일: 2011년 11월 7일

발행된 지 며칠 안 된 따끈따끈한 책을 읽게 되었다. 부제대로 현대 도시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성찰이라기보다 그냥 가벼운 추억과 상념에 가까운 글들이 많다.

각각의 장은 하나의 특정 도시 공간과 짤막한 부제로 되어 있다.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모텔, 최후의 망명지
백화점, 욕망의 진앙지
카지노, 폐광지의 불야성
테마파크, 웰컴 투 원더랜드
경기장, 그 많은 '개인'들의 용광로
박물관, 유한한 삶과 영속의 시간
공항, 해체된 시간과 재구성된 공간
기차역, 식민의 기억과 현대의 속도

특별한 주제 의식 없는 듯 이어지는 글들은 공감이 가는 것도 있고,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들도 있다. 추억과 기억이 많이 담겨 있음에도 감정 같은 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공간을 바라보는 시점도 독특하다기보다 평범하다.

지면의 반 정도는 사진이다. 때로는 근래의, 때로는 오래 전의 사진이 해당 장소의 변화를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장소의 변화와 함께 읽히는 글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물질 문명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삶을 안타까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건조한, 그리고 무언가 결핍된 듯한 도시의 삶을 그대로 담은 듯한 글이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쓴 수필이 도시의 공간을 소재로 하고 있고, 사진이 실려 있다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뭔가 살짝 모자란 듯한 느낌마저 도시의 삶을 표현한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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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15, 2011


제목: 아티스트 웨이 (Artist's way)
지은이: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
옮긴이: 임지호
출판사: 경당
발행일: 2003년 11월 20일 (원저 2002년 7월)

일단 제목부터 뭔가 이상하다. Artist's way. 한글로는 음절의 종성에 sts 를 표기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Artist 와 전혀 구별할 수 없게 표기하는 것이 용서가 될 것 같지 않다. '예술가의 길' 이라거나, '예술적 방법', 뭐 그런 식으로 번역 같은 것을 할 수는 없었을까? 누군가는 한국인이 유일하게 창의력을 발휘하는 부분이 번역이라는 농담까지 한 걸 보면, 번역 해 봐야 나아지는 건 없었을 수도 있겠다.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12주간의 여행' 이라는 부제에 혹했다. 내 일을 좀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거나,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한다거나 할 수 있는 조언을 구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 책은 예술가가 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한다. 그것도, 일, 인간관계, 가정생활 등을 다 때려 치우고 예술에 매진하라고 몰아부친다.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가족들을 아주 간단히 '장애물'로 규정하고, 단호하게 끊어버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등골이 서늘한 일이다.

대신, 모든 창조의 원천인 신과 친해지라고 한다. 또, 비슷한 '아티스트' 들과 친해지라고 한다. 거 참 미칠 노릇이다. 불량청소년들끼리 모인 그룹이 연상된다. 나처럼 거의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창조의 원천인 신 같은 설명보다는 뇌 신경 세포 사이에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이 훨씬 더 친근하고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누군가가 내 작품에 혹평을 하면 그런 사람들 얘기는 무시하고, 가급적 관계를 끊으라고 권고하면서, 정작 누군가가 도움을 주면 신이 창조성에 대한 선물을 주는 것처럼 해석한다. 정말 아전인수도 이정도면 조선일보 급이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 핵심 실천을 요구한다. 그 하나는 모닝 페이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세 페이지 정도 마음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글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아티스트 데이트.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모든 연락을 끊고 자신의 내면의 아티스트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이 두 가지는 꽤 좋은 마음의 양식이 될 것 같다. 일기를 쓰는 것이 어느 정도는 모닝 페이지와 비슷한 효과를 줄 것 같고, 워낙 혼자 놀기를 좋아해서 아티스트 데이트 같은 시간은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직업적인 예술가, 특히 글을 쓰는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처럼 그저 좀 더 창조적인 일상생활 정도를 원하며 이 책을 집어 드는 사람은 당혹, 당혹, 당혹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 같다. 특히나 이성과 지성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이성이란 창조성을 방해하고 트집을 잡는 비평가로, 마치 없어져야 할 정신질환의 일종 같은 취급을 받는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왜 읽었을까.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었는데......

=^.^=

Monday, November 07, 2011


제목: 압구정 소년들
지은이: 이재익
출판사: 황소북스
발행일: 2010년 12월 1일

모처럼 소설을 골랐다. 그것도 예술 소설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소설. 3일인가 4일 만에 다 읽어 버린 것 같다.

유명 가수이자 여배우인 서연희가 의문의 시체로 발견된다. 정황상으로는 영락 없는 자살이다. 그녀의 빈소 앞에 모인 고등학교 동창들. 그중 기자가 된 '현우주' 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사건을 풀어 나간다.

부유한 가정에서 별 걱정 없이 그럭 저럭 대학을 가고, 상류층으로의 편입이 기정사실 화 되어 있는 압구정 고등학교의 학생들. 그들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서울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에서 보기에는 그저 배부른 고민들이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마는지, 취미로 락 음악을 계속 할 지 말지, 그정도의 고민들. 주거비용이나, 등록금, 학원비 등은 전혀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는 장래 진로 조차 별 고민이 없다 - 원하는 진로로 갈 수 있는 과외를 받으면 되니까.

마치 유명 만화 '이십세기 소년' 을 보는 것처럼 이야기는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현재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주인공은 점점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연희의 죽음을 둘러싼 사연들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마지막에는 나름 반전. 멋지다기보다는 허탈한 느낌을 주는 그런 반전이었다.

작품은 전체 12 챕터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챕터는 유며한 음악의 제목을 달고 있다.

track 1 수정 눈동자(Crystal Eyes - LA Guns)
track 2 열여덟살 그리고 인생 (18 & Life - Skid Row)
track 3 사람들은 이상해 (People Are Strange - The Doors)
track 4 나만의 그대 모습 (B612)
track 5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the Jungle - Guns N'Roses)
track 6 꼭두각시의 조종사 (Master of Puppets - Metallica)
track 7 상자 속의 남자 (Man in the Box - Alice in Chains)
track 8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The Show Must Go on - Queen)
track 9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 Led Zeppelin)
track 10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Highway to Hell - AC/DC)
track 11 광란 (Hysteria - Def Leppard)
track 12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 (Don't Look Back in Anger - Oasis)
bonus track 작가의 글

제목으로 걸린 곡 외에도 많은 곡들이 중간 중간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 내가 락 또는 메탈을 좋아해서 저런 곡들이 익숙했다면 책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락이나 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음악을 듣는 양 자체가 적다. 음악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진 않은데......)

잘 짜여진 구조의 스릴러를 원한다면 조금은 엉성해 보이는 글이다. 성장소설로 보기엔 주인공의 현실이 참 칙칙하다. 문장도 세련된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 저것 따지지 않는 엔터테인먼트로는 꽤 괜찮은 것 같다. 연예계 이야기도 나오고, 음악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상류층 자제분들의 생활상도 나오고......

문학이나 예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즐길 만 한 읽을거리를 원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책이다.

=^.^=

Tuesday, November 01, 2011



제목: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
지은이: 남경태
출판사: 들녘
발행일: 2007년 3월 20일

마치 이 책만 한 번 읽으면 세상 모든 비밀을 알게 될 것만 같은 제목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출판사의 기획 시리즈였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라는 시리즈.

학창시절, 음악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 '음악의 이해' 라는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했는데, 그 과목이 실질적으로는 '음악사'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서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그 전부터도 '국사', '세계사' 같은 과목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여간해서는 '~사' 시리즈에 눈길을 잘 안 주는 편인데, 이 책은 바로 '서양철학사'다.

여기에서 소개된 인물들과 그의 주요 사상에 대한 한 줄 요약 정도만 차례대로 외고 있어도, '한 철학 한다' 할 수 있을 만큼 서양 철학사를 일목요연하게 잘 훑고 있다.

인물들만 나열해 보자면: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플로티노스, 아리우스, 오리게네스, 펠라기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에라우게나, 안셀무스, 아벨라르, 이븐 시나, 이븐 루슈드,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컴, 미란돌라, 에라스무스, 플레톤, 코페르니쿠스, 베이컨, 데카르트, 홉스,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버클리, 흄,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칸트, 피히테, 셀링, 헤겔,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벤담, 밀, 니체, 프로이트, 후설, 베르그송,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무어, 프레게, 러셀, 카르나프, 비트켄슈타인,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가타리, 데리다,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하버마스.

대부분 한두 번 쯤은 들어 보았을 듯한 유명한 이름들이다. 의외로 다른 분야의 대가로 알던 사람도 적지 않다. 수학자라거나, 물리학자라거나, 경제학자라거나, 심리학자라거나...... (그중 반갑지 않은 이름도 있다. 얼마 전 아주 진저리를 쳤던 들뢰즈/가타리. 그래도 나름 철학사에 이름 한 줄 올릴 만은 한 사람인가보다. 어쨌든 아주 잘못된 방법으로 소개를 받은 덕분에, 이름만 봐도 짜증이 확 치민다. 빌어먹을 열하일기......)

세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알 수 있는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안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알면 뭐하나. 그런 이야기들.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또 인간의 관점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 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한국인이어서 비교적 쉽게 읽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런 류의 책이 독일어 원문에서 일본어 번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 보통은 전문가도 이해하기 힘든 신비로운 서적이 되곤 한다.) 다만, '서양' 으로 알려져 있는 유럽과 미국 쪽으로 국한된 것이 조금 아쉽다. 동양에 대해서도 이런 좋은 책이 있었으면 싶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라는 제목에 부합할 만큼 잘쓰여진 책이다. 하루 하루 사는 게 바빠서 먹지도 못하는 철학 따위에 관심 줄 시간도 여유도 없는 사람이라도 이 블로그를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것을 권하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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