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30, 2013

신화 순례


제목: 신화순례
지은이: 김봉준
출판사: 미들하우스
발행일: 2012년 9월 10일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길 바라며 골랐다. 우리 문화의 원형을 찾아 떠난 세계 신화 순례기. 세계 각지의 신화와 우리의 신화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런 기대를 한다면 이 책을 펼치지도 말자.
이 책은 기행문이다. 신화를 찾아서 떠난다고는 하지만, 저자는 딱히 특별한 신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마냥 자기 얘기만 한다. 어디에 갔더니 신화적인 삶을 살고 있어서 좋다 뭐 이런 얘기. 정작 신화를 서술하고 있는 내용은 책 전체에서 열 페이지도 안 된다.
책 안쪽에 저자는 화가이며 조각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문장이 대개 거칠다. 도무지 매끄럽게 이어지지도 않고, 전하려는 바가 깔끔하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이런 점은 원래 문인이 아니니 그러려니 해 두더라도, 책에 오탈자도 적지 않고, 같은 단어를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정도면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소양도 부족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중간 중간 저자가 시를 적어 놨는데, 그게 또 심하게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냥 대충 짧게 줄바꿈 하고 가끔씩 행을 띄어 주면 시기 되는 건줄 아는지......
230쪽의 자료 사진과 278쪽의 자료 사진은 완전히 동일한데 설명이 다르다. 자료 사진이 풍성하긴 하지만, 2천년대 이후의 사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화질이 조악한 것들이 많다. 저화질 사진을 억지로 확대한 듯이 계단현상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사진, 촛점이 안맞아 뿌연 사진, 수평 수직이 안맞아 삐뚜룸한 사진, 어딘가에서 스캔한 듯 광 간섭 무늬가 돋보이는 사진, 도무지 뭘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사진 등등.
전반적으로 그냥 대충대충 찍어서 대충대충 써서 뚝딱 찍어낸 물건으로 보인다. 최소한의 교정이나 편집도 생략하고 일단 밀어 낸 것 같다. 그런데 책값은 이만원! 한숨이 절로 난다.
비록 형식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전하는 내용이 알차면 읽고 나서 보람이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도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충 요약해 보자면, 고대에 아주 좋은 여신 신화가 있었는데, 가부장적인 남신 신화가 득세하며 세상이 살기 피곤해졌다는 듯. 그중에도 특히 현대 과학 기술에 대한 집착 내지는 의존은 인간의 영성을 퇴보시킨다는 듯. 그래서 고대 여신 신화에 귀의하면 뭐든지 다 잘 될 거라는 듯.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주장이고, 주장의 근거는 뭐고, 그런 거 하나도 없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쓰는 지 모를 신화화, 재신화화 같은 단어를 만났을 때엔 예전에 치를 떨었던 들뢰즈/가타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저자는 무슨 뜻인지 알고 있긴 할까?
저자의 팬이라면, 책 중간 중간 만나는 저자의 작품 사진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 현대 과학이 인간의 영성을 망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재신화화' 라는 해법에 공감할 지 모르겠다. 그런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가급적 읽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 읽을 시간에 차라리 재미라도 있는 만화책을 읽자.
=^.^=
뱀발: 너무 혹평을 해서 조금 미안한 감도 있다. 그런데 도무지 좋은 소리 할 구석을 못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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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y 13, 2013

죽음이란 무엇인가


제목: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
지은이: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옮긴이: 박세연
출판사: 엘도라도
발행일: 2012년 11월 21일 (원저 2012년 4월 24일)

책 표지를 보고 점토 인형 내지는 도자기 인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다! 바로 저자. 철학 교수인데, 늘 저렇게 교탁 위에 앉아서 강의를 한단다. 범상치 않은 분이다.
예일대학교의 교양 철학 강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대학교는 교양이 참으로 빈곤하다. 학교라기보다 취업학원에 가까운 현실이다보니,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는 없다. 죽을 병이라도 걸려 병상에 드러눕기라도 하기 전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불행한 사회다.
삶은 무엇인가. 삶이 끝난 후란 어떤 상태인가.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영혼은 존재하는가,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영혼은 어떤 존재인가, 정말로 영원 불멸의 존재인가 등등.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계속 이어진다.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과연 죽음은 정말로 나쁜 것인가,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 있을까, 자살이란 합리적인 행동인가.
저자는 몇 가지 논증을 통해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논의를 이어간다. 나도 얼마 살지 않은 경험과 지식으로 미루어 볼 때 영혼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이렇게 세밀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굳이 영혼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세상 만물은 영혼의 존재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보다 더 단순하게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
맨 앞장에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 라고 씌여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한참 논의한다. 과연 영생은 얼마나 좋은 것일까? 백년, 이백년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영원한 삶. 내 지식으로는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는 시점에서는 멸망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런 천문학적인 시간을 뛰어넘는 문자 그대로 '영원한' 삶이라면?
여기에 대해서는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느낌이 없다. 하지만 영원한 삶은 언젠가는 현재의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삶이거나,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이 지겨워져 버린 우울한 삶이 될 거란다. 생물학적으로, 천체물리학적으로, 혹은 귀납적으로 영생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와 닿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지만, 결론은 같단하다. 삶이 언젠가 끝나기 때문에 소중할 수 있다는 것.
이 책을 읽는 시간은 흔하지 않게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가 특정 사상이나 종교에 기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도 무척 매력적이다. - 허구헌날 신의 뜻이 어쩌고, 영혼이 어쩌고, 대자연의 질서가 어쩌고 하는 책들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짜증날 지경이다. 게다가, 철학적 배경 지식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도 정말 다행스럽다.
아예 생각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외에는 누구나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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