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3, 2011


제목: 중용 인간의 맛
지은이: 김용옥
출판사: 통나무
발행일: 2011년 9월 20일

이번에도 동양 고전이다. 스스로는 박식하지 않다고, 그래서 '돌' 이라고, '도올' 이라고 스스로 호를 붙인 분이 쓴 책이다. 일각에서는 시원 시원 말을 잘 한다고 평하고, 일각에서는 막말이 심하다고 평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에 대한 평만 주워 들었지, 실제 그의 저작이나 강의를 제대로 접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쯤 나 스스로 느껴 보고 싶었다.
'중용' 이라는 고전에 대해서는 유명한 사서오경 중의 하나, 유교적으로 중요한 책, 뭐 그정도 이상은 알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최소한 몇 백 년, 어쩌면 천 년도 넘은 책이 현대의 내게 엄청난 뭔가를 전달해 주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전에 다른 신영복 선생님의 '고전'을 읽었을 때의 느낌으로 보아 이 책에서도 나는 중국이라던지, 유교라던지, 사서오경이라던지 하는 것보다 '김용옥'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런 기대로 책을 골랐다.
맨 처음 만나는, 머리말 치고는 좀 긴 '서' 와 맨 마지막의 '후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같은 구성이다. 중용의 원문을 한자와 병음으로 쓰고, 그에 대한 해석을 적고, 저자의 해설이 붙어 있다. 해석 역시 저자의 해석이다.
첫 장의 처음 부분이 다음과 같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여기서의 性, 道, 敎 는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 의미가 아니라 특정 철학적 개념이다. 이 세 가지의 큰 주제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러 가지로 변주되며 반복된다. 내게는 해당 개념으로 현재의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고대 서양의 사대원소를 가지고 현대 과학을 설명하려 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시도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무척 진지하게 중용 사상을 현대에 구현하고 싶어 한다. 공자의 제자인 자사가 편집했다는, 문자 그대로 '공자님 말씀'인 중용을 구현할 수 있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이천 년이 넘은 문자를 지금 해석한 것이 과연 그 때 그 말씀일까? 본의 아니게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특히나 性 처럼 애매한 철학적 관념이라면 더욱 더 제대로 전달 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책을 읽어 나가며 좀 당혹스러웠던 것은 어휘이다. 서양 철학의 어휘를 종종 그냥 사용한다. 케리그마, 타우마제인, 디스꾸르 등은 내 배움이 일천해서인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생소했다. 그래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 것 같다. 어려운 한자어라면 생소하더라도 당혹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당연히 어려운 한자어도 많이 나온다.) 특히 몸(Mom) 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우리말의 몸, 영어의 body 에 해당한다고 생각해도 문맥상 별로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위와 같이 알파벳으로 Mom 이라고 따로 적혀 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내가 알고 있는 세 개의 사전 - 네이버 사전, 웹스터 사전, 구글 사전 - 은 이구동성으로 '엄마' 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도무지 문맥에 맞지 않는다.
중용은 오랜 시간 중요한 고전의 지위를 지키고 있어따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무척 매력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당위, 국가의 가치, 개인으로서 삶의 목적 등이 어렴풋이나마 언급되고 있다. 다만 끝부분에 가서는 정말 황당무계하게 느껴지는 공자에 대한 신격화가 등장하는 것이 무척 아쉽다. 아마도 내가 다시 중용을 편집한다면 민망해서라도 삭제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 정권(이명박 정권)에 대한 강력히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과연 이 내용이 중용과 관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부분 역시 신영복 선생님의 '고전'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용에는 동감하지만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부적절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유교, 중국, 동양 고전 등에 대해서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다만 언급한 것처럼 생소하고 당혹스러운 어휘와, 공자에 대한 신격화,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정도는 사람에 따라서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Ps. 중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맨 뒤 부록으로 딸려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 중용을 독송합시다' 를 먼저 한 번 읽어 보고 나서 본문을 읽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부록이 있는 줄 모르고 처음부터 그냥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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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07, 2011


제목: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Manhood: An action plan for changing men’s lives)
지은이: 스티브 비덜프 (Steve Biddulph)
옮긴이: 박미낭
출판사: 젠북
발행일: 2007년 4월 25일 (원저 2002년)

An action plan for changing men's lives 가 어떻게 해서 '그 잃어버린 진실'이 되었을까?

이 책은 좀 독특한 책이다. 굳이 독자를 남성으로 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만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과 현재 상태의 문제점, 그리고 그 개선 방향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잃어버린 남성성 회복을 위해 모종의 '남성운동'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공감 가는 이야기이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들은 ~~해야 해' 라는 말을 셀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란다. (혹시 여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나?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또, 남자들간의 관계는 심하게 경쟁적인 환경이어서, 강한 남자라 할 지라도 고독 속에서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성장하게 된단다. (혹시 여자들도 다른 방면에서 더 격한 경쟁을 하지는 않을까? 역시 잘 모르겠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숙한 남성으로 가는 일곱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라.
2. 성생활의 성스러움을 찾아라.
3. 자신의 짝을 동등한 존재로 만나라.
4. 자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라.
5. 진정한 동성 친구와 사귀는 방법을 배워라.
6. 당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라.
7. 자신에게 내재된 야성의 고삐를 풀어라.

인간이 발전시켜 온 문명의 이기들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급속히 바꿔 놓았으며, 그 결과로 현재 사회는 전통적인 '남성성' 보다는 '여성성'이 더 필요한 사회가 되었다. 덕분에 남자아이들은 제대로 된 '남성성'을 접할 틈도 없이 남자 어른이 되고, 그러한 현상이 몇 세대에 걸쳐 누적된 탓에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다. '아빠'들은 아침 일찍 직장에 갔다가 밤 늦게 돌아오는 탓에, 아이는 주로 엄마의 손에 길러지고, 학교에 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사가 여자인 탓에 역시 남성성을 배울 기회가 없단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제대로 된 남성성을 가르칠 수 있는 '원로' 남성이다. 문제는 현재의 남성 대부분이 남성성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는 건데, 이 책은 그 부분을 남성들 간의 연대를 통해 보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남성성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다.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무시하자.) 따라서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상당 부분 남성성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자녀들과의 적극적인 관계를 통해 그들의 남성성이 상처입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동성 친구들 과의 협조적인 연대 관계를 통해 도움을 받는다. 그밖에 성생활의 성스러움이나, 동등한 파트너쉽, 직업 선택 등은 성별에 관계 없는 공통 사항이라 생각된다.
남성성 회복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이 결국은 여성들에게도 득이 되어, 인간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에는 적극적으로 동감하지만, 두어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먼저 여성들에 대한 환상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덜 경쟁적인 성장 환경에서 여성성을 보호받고, 이후에도 여성들끼리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상처입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검은콩과 흰 콩 수십억 개를 잘 섞은 다음, 검은 콩만 선택적으로 상처입힐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과연 검은 콩 대부분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 흰 콩들은 별 탈이없을 수 있을까?
또 하나는 종교에 대한 관점이다. 어떤 방식이건 종교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다. 종교적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내 주변의 엔지니더 들에게는 별로 종교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남성성'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극 공감되거나, 적어도 반대할 이유는 딱히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그 해결책 중의 하나로서 적극 검토되어야 할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또, '남자'로 사는 것이 피곤하거나 허무한 사람들에게는 뭔가 개선점이 되어 줄 만한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내 남자는 왜 이모양일까?' 하는 여성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이해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 같다. - 전반적으로 성인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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