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07, 2012


제목: 흑산(黑山)
지은이: 김훈
출판사: 도서출판 학고재
발행일: 2011년 10월 20일

참 암담한 소설이다. 매 맞으러 가는 걸로 시작한다. 어떻게 맞아야 덜 아프다는 민간요법. 곤장에 대한 공포. 그런 어두운 색채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막연히 어린 시절 선생님한테 엉덩이를 맞던 기억보다 조금 더 아픈 매가 아닐까 상상했던 곤장은 훨씬 강렬한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

매는 말로 전할 수 없었고, 전해 받을 수가 없으며 매와 매 사이를 글이나 생각으로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는 책이 아니라 밥에 가까웠다. (13쪽)
매와 매 사이에서 세상이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13쪽)
허벅지에 닿은 매가 볼기를 터뜨리면서 엉치뼈를 때려서 척추가 비틀렸다. 매는 박한녀의 척추를 따라서 머리로 올라갔다. 첫 매에 박한녀의 머리와 사지가 늘어졌다. 터진 볼기에서 살점이 흩어지고 피가 튀었다. (238쪽)

1800년경. 역사적으로 조선 후기의 이야기다. 정권은 부패해서 백성들의 곤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던 시절.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 거기에 위안을 삼으려는 백성들. 그 꼴을 보아 넘길 수 없는 정권. 그래서 줄줄이 천주교를 믿은 죄로 잡혀가고, 죽어나가는 그런 이야기다.

정씨 가문에서 약종은 참수. 약전, 약용은 장기유배. 그중 흑산도로 유배 가는 정약전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흑산도의 삶은 이런 모습이었다.

논이 없어서 물고기를 잡아 곡식과 바꾸는 섬에 세금과 신역이 쌓여서 땅에 코를 박은 백성들은 주려 있었다. 섬의 땅은 훈련도감의 둔전으로 흑산진이 지세를 거두어 본감으로 보냈다. 배와 미역에 부과하는 세금은 흑산진의 본영인 우수영으로 올라갔고 물고기 세금은 목민 관할인 나주목으로 올라갔다. 섬에 닥나무가 자생해서 백성들은 종이를 만들어 도감에 올려 보내야 했는데, 할당량 일천육백 속을 채우지 못하면 돈으로 걷어 갔다. 사람마다 몫이 정해져서 어린아이까지 지역이 매겨졌다. 보리밭과 대밭에는 소출에 관계없이 면적에 따라 세금을 매겨서 우수영에서 가져갔다. 보리밭 두렁에 심은 콩은 모종 수를 헤아려 세금을 매겨서 흑산진에서 가져갔는데, 본영인 우수영도 모르게 흑산 별장이 정한 세금이었다.
공물을 실은 배가 떠날 때, 선박 운항비와 선원들의 수고비를 흑산 백성들이 내야 했고 육지에서 건너온 관원들은 월해채를 뜯어갔다. 태풍 때마다 표류해서 밀려오는 상국 배의 선원들을 먹이고 재우고 양식을 주어서 뒤탈이 없도록 돌려보내는 일도 섬 백성들의 몫이었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유배 죄인들을 받아서 기약 없는 세월을 먹이고 거두는 일도 섬의 몫이었다. (88-89쪽)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어이 없이 죽어나가고, 정약전의 사위인 황사영이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맺는 이 소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고 암울하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338쪽)

유배되어 딱히 할 일도 없는 서울 양반은 이렇게 흑산도에 자산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남는 시간 물고기를 들여다 보며 '자산어보' 라는 책을 썼단다. 참 장하기도 하셔라.

이와 같은 암담한 상황에서 나라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가장 근접한 답이 '자살'이 아닐까 싶은데......

책에서는 천주교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없이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은 천주교를 진리와 구원의 빛으로 받아들인다. 상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고등어 한 마리에까지 세금을 매겨 뜯어가는 마당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얘기는 사뭇 솔깃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천주교가 어떤 종교인가? 신의 사랑 이라는 명분으로 죽여 없앤 사람의 수가 이 세상 그 어느 질병으로 죽은 사람보다도 많다는 종교. 나와 다른 이교도는 끝까지 죽여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는 종교. 약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패가 만연한 종교. 게다가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 부역하여, 선교라는 이름으로 약소국 침략에 선봉으로 나서는 종교가 아닌가! 자기네가 힘이 없을 때엔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할 듯 세력을 규합하지만 한 줌이라도 힘을 갖게 되면 신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주력하는 그런 종교인데......

현실이 암담하다지만 천주교에 빠진 사람들은 다분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도망 다니다가 붙잡히는 황사영 같은 경우에는 하느니의 이름으로 거대한 군함을 끌고 와서 조선을 박살 내 주기를 바라는 밀서를 쓰기까지 한다. 물론 국민들 등골을 휘게 하는 부패한 조선 말기 정권을 비호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내 기분 같아도 싹 죽여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어딘가 한참 잘못 된 느낌이 든다. - 종교란 참 편리한 도구구나. 잘 물들여 놓으면 이렇게 나라를 통째로 들어다 바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사람까지 생기고......

천주교, 또는 기독교가 (밖에서 보기엔 그게 그건데......) 빛이고 구원이고 영생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 책을 정말 스릴과 감동이 넘치는 역사소설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그 종교는 또 하나의 사회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두 배로 암담하고 역겨운 상황에서 헤어 날 수 없는 책이다.

암담하지만, 민주주의와 국민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하지만 너무나 끔찍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가급적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스타크래프트 보다 수십 배는 더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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