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07, 2011


제목: 정재승+진중권 크로스
지은이: 정재승, 진중권
출판사: 웅진 지식하우스
발행일: 2009년 12월 15일

오랜만에 '가벼운'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바로 전 읽었던 몇몇 책들에 비하면 내용도 가볍고, 물리적으로도 가벼운 축에 든다. '무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라는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가 2명 이상이고(2명이다!) 그들의 전문 분야가 상당히 다르다. 한명은 미학, 한명은 뇌공학. 둘 다 '민간인' 들에게는 좀 생소한 분야다.

21개의 키워드로 21세기의 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시도로 쓰여진 책이다. 각 키워드에 대해서 미학자가 한 챕터, 뇌공학자가 한 챕터씩 '썰'을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엮여 있다.

여기에서 선정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프리 쇼, 20세기 소년, 헬로키티, 셀카, 쌍꺼풀 수술, 앤절리나 졸리, 프라다, 생수, 몰래카메라, 개그콘서트, 강호동 vs 유재석, 세컨드 라이프, 9시 뉴스, 레고, 위키피디아, 파울 클레, 박사.

일부는 확 와 닿는 반면 일부는 다분히 20세기적이란 느낌이 들고, 또 일부는 생소하다. 도대체 '민간인' 중에서 파울 클레의 작품을 세 개 정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파울 클레 가 칵테일인지, 무슨 스포츠 경기 용어인지, 남미 정치가의 이름인지도 확신하지 못할 텐데...... (내가 너무 무식한 걸까?)

두 사람의 글은 은근히 현학적이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세상에 앤절리나 졸리에 대한 전문가 같은 게 있기는 할까!)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이 책에 쓰여진 것이 저자들이 아는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같이 제프리 쇼가 트루먼 쇼와 비슷한 부류일 거라고 추측하는 무식한 독자를 위한 겸손한 배려일 것이다.

그 중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을 하나 소개한다.

과학자들에게 9시 뉴스는 애증의 연인이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9시 뉴스는 정치인들이 싸우는 얘기, 절망적인 경제 수치들, 사회에서 벌어진 각종 흉악한 범죄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 안에 과학자들이 치열하게 보낸 하루는 어디에도 없다. 9시 뉴스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그날 있었던 스포츠 경기 스코어보다 더 하찮게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에게 일깨워주는 고독한 시간이다.

평소에도 과학자들이 실제 사회에 공헌하는 바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게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은 정말이지......

위 인용문은 과학자가 쓴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편안하고 자유롭게 전개해 나가는 글들은 어떤 게 과학자가 쓴 거고, 어떤 게 미학자가 쓴 건지 얼핏 봐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시점과 자유로운 발상이지만, 안좋게 보면 몰개성이고 기준의 상실일 수도 있다. 공학자의 시선과 미학자의 시선이 그렇게 차이가 없다면 왜 저자가 2명이어야 하겠는가!

전반적으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책이다. 몇 개의 키워드는 '아하!' 하고 감탄이 나올 만큼 절묘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산만하게 흘러 버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 같은 것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 내가 무식해서 못 본 건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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