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워크
제목: 굿 워크 (Good Work)
지은이: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옮긴이: 박혜영
출판사: 느린걸음
발행일: 2011년 10월 21일 (원저 1979년)
또 무성의한 제목 번역이다. 굿 워크. 영단어 work가 책에서 노동, 일 자체, 직업 등을 망라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적당한 한글 단어를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워크를 가져다 쓴 모양이다. 그러는 김에 굿 도 그냥 가져오기로 했나보다. 그럴 거면 번역은 뭐하러 하는데?
이 책은 전반적으로 굿 워크. 말하자면 좋은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번 읽었던 '성장의 한계' 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물질 문명의 지속적인 성장은 멈출 수 밖에 없고, 그 지점에서 인간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실천적인 답이다. - 고도로 진행된 대규모 산업화와 그에 따른 분업화에 의해 인간은 노동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노동에 의해 고통받고 있단다. 그래서 거대 자본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는 대규모의 기술을 버리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중소 규모의 기술 체계로 돌아가자는 것이 주요 내용.
실제로 저자는 스콧 배더 라는 특이한 형태의 기업을 운영했었단다. 직원위원회를 통해 모든 직원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소유권 회사. 그렇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규모, 직원간의 임금 격차, 심지어는 수익 까지도 일정 규모를 넘어가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단다. 그것이 1960년대의 일이다.
현재, 2012년은 책이 쓰여진 1979년과는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모든 산업의 규모가 커져 버렸다. 심지어는 길거리 분식집과 구멍가게도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뛰어들고 있을 정도다. 금융 마피아라고도 일컬어지는 금융산업의 규모는 이미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거대 자본을 배제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도입할 수 있을까?
저자가 제시하는 사회 또는 기업의 모양은 솔깃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이상하리만큼 영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처럼 놀라운 존재가 어떻게 원자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생겨났겠는가/ 말도 안 되지.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지. 인간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책 226쪽)
참 편하기도 하시다. 일단 뭔가 잘 모르겠으면 그냥 '신의 뜻' 이라고 해 버리면 되니까. 그리고 저런 뭔지 모르는 것을 때우기 위해 갖다 붙인 껌딱지 같은 신과의 정신적 교감이 인간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라 여기고 있다. 이런 점에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못한다. 그저 고대인의 망상의 집합체에 불과한 신이 리만 가설이나 푸엥카레 추측, 아니면 P-NP 같은 것을 증명해 줄 수 있으려나?
1970년대에 산업사회의 한계를 예측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 만 하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너무나도 어이없고 보잘것 없다.
신과의 교감이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고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답이 없는 우울함일 뿐이다. 과연 자원 고갈과 양극화로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는 어떻게 변해가야 할까? 내 생각엔 적어도 신앙은 그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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