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03, 2012

내가 살던 용산

제목: 내가 살던 용산
지은이: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출판사: 보리
발행일: 2010년 1월 20일

만화책. 보통 사람들은 흔히 만화에 대해 가벼운 매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웃기거나, 재미있거나, 로맨틱하거나, 판타스틱 하거나, 아니면 에로틱 하거나...... 그런데 이 책은 만화책이면서도 위에 열거한 속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 어찌 보면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판타스틱한 일일 수는 있겠다.

용산참사.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들의 항의 농성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 6명이 사망했다. 나는 이 일의 전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힘 없는 사람들이 택한 최후의 저항이 죽음이라는 과격한 결과를 가져왔고, 억울한 사람이 무척 많으리라는 생각 정도 뿐.

이 책은 여러 명의 만화가들이 철거민 희생자들을 밀착 취재하고, 그 내용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다소간 공권력보다 철거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진작에 작가들이 고소, 고발을 당하고 잡혀갔겠지.

원래 내용 자체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잘 살던 사람이 막무가내로 내모는 '재개발 사업'에 떠밀려 어떻게 몰락하여 죽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니, 우울할  수 밖에 없다. 그중에도 특히나 더 읽는 사람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철저히 자본의 편인 경찰들이다. 용역 깡패엔 더할 나위 없이 관대하고, 철거민들엔 추상같은 경찰. 그리고 법원.

전철연 이라는 단체가 있단다. 전국 철거민 연합. 국내 주류 언론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데모와 시위를 전문으로 하는 의심스러운 단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살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 더이상 할 것이 없는데 어쩌라구?

어떤 상점이 있다. 1억원을 들여서 인테리어 등 투자를 하고, 월 오백만원 정도의 수입이 나온다. 계속 운영이 된다면 빚을 갚아 나가며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상점이 재개발 대상으로 결정된다. 상점의 운영자는 기껏 3천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들인 돈이 1억원이고, 그래서 빚이 5천만원이 넘는데, 보상금은 3천만원 남짓이다. 당장 수입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투자비 보전도 안된다. 저 보상금은 어떻게 계산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이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한 거다.

요구에 대한 대응은 아주 비열했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동네를 아주 슬럼화 하는것. 그러면 도저히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물론 경찰은 용역 깡패와 한편이다. 주민이 일방적으로 용역 깡패에게 폭행을 당해도 쌍방 과실이란다. 상점을 때려 부수고 오물을 투척하는 등은 증거가 없으므로 수사 대상도 아니다. 아마 현행범이어도 경찰은 모른척 할 게 틀림없다. 자본과 공권력과 용역 폭력이 하나로 뭉쳐서 힘없는 자들을 짓밟았다. 역시 자본과 결탁한 언론은 철저하게 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보도한 거라면 '전철연 또 폭력 시위' 뭐 이정도. 주민들이 당한 용역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이 책도 읽으면 화만 나고 답이 없는 책이다. 그림체도 내용도 우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오늘 저들이 당하고 나면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 재벌 오우너나 고위공직자라도 있지 않다면 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내용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무슨 올림픽에서 누가 메달을 따는 것보다는 훨씬 절실하고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재산이 다들 몇 억씩 되는 것처럼 판단하고 생각한다. 부자들을 위하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억울하면 출세하란다. 바로잡을 생각 따위는 없고, 가해자의 편에 서는 쪽을 권한다. 참 좋은 나라다. 돈 많은 사람한테만.

내 살아 생전에 용역 폭력이 처벌받는 것을 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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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Blogger 황금빛모서리 said...

리꿈에 남기신 글로 키티님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는 큰 수확을 올렸네요. ^^
쓰신 글을 보면서 이 책..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엔 너무 억울한 일들이 많은데, 그 이야기들은 늘 그늘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8:46 PM  
Blogger Kitty said...

방문해 주시고 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보다 힘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억울한 일에 눈을 감고 있으면,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작 뭘 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네요. ^^;

9:38 AM  
Blogger 황금빛모서리 said...

큰 일은 못하더라도, 이런 감춰진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만으도 현 정권같은 권력층들이 국민들을 함부로 생각하진 못할거라 생각해요. 키티님이 벌써 거기에 일조하신거죠..^^

9: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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