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6, 2022

레스

제목: 레스 (Less)
지은이: 앤드루 숀 그리어 (Andrew Sean Greer)
옮긴이: 강동혁
출판사: 은행나무
발행일: 2019년 4월 1일 (원저: 2017년 7월 18일)

마지막으로 글을 올렸던 2014년 12월 이후 대략 8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대부분은 망각의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려, 더이상 어디에서도 기억되지 않고 회상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을 거다. 굳이 찾고 싶다면 고고학적 기법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것들을 담기 위한 장소는 아니니까……
이런 저런 종이책과 전자책을 읽기는 했지만 따로 적지 못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검색엔진이나 가끔씩 방문하는 여기에 굳이 무언가 남길 만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고, 다른 편으로는 아마도 한가하게 사유하고 되새김질 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다. - 둘 다 핑계일 뿐인 것이, 다른 어딘가에는 훨씬 쓸 모 없는 무언가를 잔뜩 쌓기도 했고, 훨씬 여유로운 무언가에 시간을 쏟기도 했었다. 8년이란, “취미”의 영역에서는 짧다고 보기 어려운 시간이다.
이번에 잡은 책은 오랜만에 종이책이었다. 바로 직전 한동안은 전자책을 주로 읽었다. 회사에서 복지의 일환으로 상당한 분량의 전자책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해 준 덕분에,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가한 책읽기는 주로 그쪽을 이용하게 된 덕분이었다. 그러다가, 사실 몇 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종이책을 손에 잡으니 예전에는 못 느꼈던 것들을 새롭게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다.
가장 먼저, 크고 무겁다. 전자책은 휴대폰 안에 몇 권이 들어있던지 무게가 달라지지 않는다. 두툼한, 물리적인 두께가 없으니 두툼하다기 보다 내용이 많은, 책을 열두 권쯤 담아가지고 다니는 일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종이 책은, 특히 물리적으로 두툼한 종이 책은, 한 권만 가방에 담아도 그 무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마지막으로 읽었던 곳을 찾는 일이 번거롭다. 책갈피로 쓸 수 있는 끈을 - 얘도 분명 이름이 있기는 할 텐데…… - 미리 달고 있는 책이 아니라면 무언가 따로 준비를 해야 하며, 읽던 부분을 확실히 표시해 두지 않고 책을 덮었다면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다시 찾는 일은 은근히 귀찮다. 전자책은 항상 내가 읽던 마지막 위치에서 다시 열린다. 심지어는 휴대폰에서 읽다가 컴퓨터에서 같은 책을 열어도 마지막 읽던 위치가 표시되는 기적같은 신기한 기능까지 있다.
그리고 또, 인용 기능이 있다. 인상깊은 구절을 보았다면 그것을 어딘가에 기록해 두고 싶은데, 종이책은 이것이 은근히 번거롭다. 책에 밑줄을 그어 봐야 다시 찾으려면 책 전체를 뒤져야 하고, 책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싫어하는 나같은 경우는 다른 매체에 옮겨야 만족스러운데, 이때를 위해서 컴퓨터 앞에서 책을 읽는다면 도대체 뭐하러 종이책을 읽는단 말인가! 하지만 전자책은 간단히 몇 문장 복사해서 다른데 붙여 넣는 데에는 거의 제약이 없고, “형광펜” 기능으로 색칠을 해 두면 나중에 색칠한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따로 확인할 수도 있다. 게다가 종이책에 밑줄을 긋는 것과는 달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내 형광펜 작업이 다른 사람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형광펜이 내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서일 것 같다.
이런 몇 가지 같잖은 이유로, 불과 몇 개월 만에 종이책을 읽는 것이 엄청나게 불편하게 바뀌어 버렸다고 느끼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항상 어렵다. 책에 대해 어디까지 써도 되는 걸까? 극적인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을 미리 써 버리면 안된다는 점은 거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걸로 보이지만 과연 진짜 그런 걸까? 햄릿이나 리어왕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극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야기 하는 것이 무례한 일일까? 원작은 출판된 지 5 년 정도 지났고, 한글판은 출판된 지 3년 정도 지난 이 책에 대해서 나는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또는 어디까지가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에 속할까? 검열 할 것 다 하고 나면 뭐가 남아 있을까?
그래도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에 나와 있는 내용까지는 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간추려 보자면, 이 책은 여행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가다. 그리고 동성애자. 헤어진 연인의 청첩장을 받는다. 정말 가기 싫어서 핑계를 찾는다. 그래, 외국으로 떠나자. 그렇게 훌쩍 세계 여행을 떠나간다.
썩 잘 준비되지 않은 어수선한 여행길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심경처럼 다소간 두서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한 조각씩 꿰어 맞추다 보면, 왜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갈 것도 같지만, 역시 여기에는 큰 벽이 있다.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동성 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대체적으로 가능한 나라다. 나로서는 아직 구경도 한 번 못 해본 행사라서 어떤 느낌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도망치려고 하는 건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또, 역시 미국인이다. 엄청 잘나가는 작가는 아닌 것으로 묘사되지만, 나름 해외에서 번역 출판된 작품도 있는 중견 작가다. 그래서인지 경제적 고민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몇 개월에 걸쳐 멕시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모로코, 인도, 일본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계획은 소득 수준이 세계 평균 근처에 있는 사람이 선뜻 떠올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상위 20% 부근에서도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인공의 처지에 공감보다 거부감이 더 들었다. 게다가 영어 외에는 독일어를 서툴게 할 뿐, 딱히 다른 언어를 쓰지 않는 것 같은데도 일단 떠날 수 있다. 세계 어디에나 영어를 쓰는 사람은 있을 테니……
더군다나 이 사람은 연애사도 딱히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났고, 천재라고 생각하는 존경할 만한 사람과도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지냈고, 반대로 훨씬 젊은 친구와도 깊은 관계로 지내 보고……
그렇게 세상 부러운 인물이 약간의 감정적 어려움에 방황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가소로운 듯한 측은함이 느껴졌다. 공업수학과 이산수학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다항식의 미분을 어려워하는 고등학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 너도 너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 하지만, 테일러 급수와 푸리에 변환 같은 걸 해야 하는 날도 온단다.
이런 점은 작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는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8쪽
“백인 중년 남자예요?”
“네.”
“백인 중년 미국 남자가 백인 중년 미국인의 슬픔을 품고 걸어 다닌다?”
“세상에, 그런 것 같네요.”
“아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그런 사람은 공감하기가 약간 어려워.”

더군다나, 여자와 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하고 게이와 함께 살다가, 늙고 병들자 다시 전처에게 돌아가는 멋진 남자도 나온다. 그 여자분은 도대체 어떤 정신 수양을 했을까? 어쩌면 그분의 이야기가 이 주인공 - 나이 50에도 어리광 같은 투정을 부리며 세계를 떠도는 남자 - 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젊은, 내지는 어린 남자와 사는 것이 화가 나지는 않았을까? 여자가 아니라서 괜찮은 걸까? 그동안에도 친구처럼 지냈을까? 그리워했을까?
이런 이야기까지 했던 여자분인데……

89쪽
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게 스물다섯 살짜리가 주식시장 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님 세금이나. 아님 빌어먹을, 부동산이나! 마흔 살이 되면 그것밖에 할 얘기가 없거든. 부동산이라니! 재금융 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스물다섯 살짜리는 누구든지 끌어내서 총살해야 한다니까.

무협지에서 등장하는 은둔 고수라거나, 로맨스 소설에서 등장하는 나만 바라보는 재벌가 외아들 이라거나, 그런 장르적 소망을 담은 가상의 존재에 이것 저것 따지는 것이 오히려 더 어이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딱 생각했던 그대로의 결말이어서 아쉬웠다” 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아쉬웠다. 작가가 세심하게 깔아 놓은 복선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주변에서 한 번도 비슷한 일을 본 적이 없다거나, 아니면 가슴 깊은 곳에서 부정하고 싶었다거나……

187쪽
“거의 쉰 살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이제야 겨우 젊게 사는 방법을 안 것 같은 기분인데.”
“맞아요! 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같다니까요. 커피를 마시려면, 술을 마시려면,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제야 알아냈는데, 근데 떠나야 하는 거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고.”

책은 제법 재미있었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세계를 무대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고민을 풀어 놓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주인공이 나보다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나보다 너무나 잘 살고 있다 보니 공감이나 연민보다 훨씬 강하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겠지?

사족: 여러 번 나온 “바보 사랑꾼” 이라는 말의 원문이 뭐였는지 궁금하다. “stupid lover” 같은 느낌은 아닐 것 같은데……

=^.^=

Friday, December 19, 2014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제목: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Getting Things Done)
지은이: 데이비드 알렌 (David Allen)
옮긴이: 공병호
출판사: 21세기북스
발행일: 2002년 3월 5일 (원저 2001년)

모처럼만에 자기계발서 류의 책이다.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집어 드는 일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데, 이번에 모종의 복잡한 사연을 거쳐서 읽을 기회가 되었다.
원제는 Getting Things Done, 줄여서 GTD 라고도 불린단다. 저자가 관련 강연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중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는 시간 관리 기법, 또는 업무 관리 기법은 대충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일거리' 라고 생각될 만한 것을 모두 수집한다.
2. 수집한 것을 분류한다.
3. 분류된 범주에 따라 처리한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흔히 사용하는 방식일 것 같다. 뭐가 됐든 일단 수첩에 꼼꼼히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수첩만 바라보는 등의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일 처리 방식임은 부정할 수 없다.
 수집 단계에선 눈에 띄는 거의 모든 것을 수집한다. 찌라시, 참고 자료, 이메일 등등.
핵심은 수집된 일거리를 어떻게 분류하느냐, 분류된 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일단 직접 뭔가 처리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분류한다. 직접 처리할 것이 없는 것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쓰레기, 보류, 참고. 쓰레기는 그냥 버리면 되고, 보류는 나중에 다시 분류할 필요가 있는 것들, 참고자료는 그냥 참고 자료.
처리할 일중 2분 - 딱 2분이 아니라,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시간 - 안에 처리 가능한 것은 즉시 수행한다. 그렇지 않은 일 중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은 위임한다. 그 밖의 것은 연기하는데, 특정 시점을 정해서 달력에 표시하거나, '다음 행동' 이라는 범주로 분류한다.
'다음 행동' 이라는 범주가 특별히 중요한데, 이 부분이 미묘하게 한글과 영어가 다른 듯하다. 아마도 영어에서는 next 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을까. 영어의 next는 현재에 바로 붙어 있는 바로 다음 정도의 미래다. 이제 곧 현재가 되는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 한글의 다음은 그냥 현재가 아닌 미래 어디쯤 이다. 영어의 next thing to do 는 절대로 먼 미래가 아니지만, 한글의 '다음에 할 일'은 바로 다음일 수도 있지만, 몇 년 뒤, 또는 무기한 연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종종 위화감이 든다. - 이 책에서 말하는 '다음 행동'은 언젠가 미래에 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바로 해야 하는 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말이 된다.
'다음에 할 일' 정도로는 분류하기 어려운 규모가 큰 일은 프로젝트를 수립해서 처리하라고는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하나의 짧은 챕터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프로젝트 관리 기법 등의 책이 몇 트럭은 될 만큼 많이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최소한으로만 설명하고 넘어간다. 프로젝트의 목적과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른 최선의 결과를 비전으로 삼아서 필요한 것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조직화 해서 '다음에 할 일'을 추출해 내는 것.
일단 여기까지 적힌 대로 분류를 다 마쳤으면, '다음에 할 일'로 분류된 목록이 있다. 언제든 짬이 나거나 여력이 될 때는 이 목록의 일들을 차근 차근 처리해 나가면 된다. 끝.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해 오고 있는 일들일텐데,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한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자신의 업무 스타일 또는 라이프 스타일을 어느 정도 수립했을 직장인 5년차 이상은 그냥 참고 정도로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라면 기왕이면 좀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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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6, 2014

오래된 연장통

제목: 오래된 연장통
지은이: 전중환
출판사: 사이언스 북스
발행일: 1판 2010년 1월 15일, 증보판 2014년 5월 30일

진화심리학 입문서.

저자는 생물학, 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순으로 학위를 받았다. 진화심리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이러이러한 심리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진화해 왔다 라는 것이 전반의 내용.

갖 태어난 인간은 갖 태어난 다른 동물에 비해 무척 약하다. 사슴은 태어나자 마자 깡총 깡총 뛰어다니지만 인간은 한동안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새끼를 낳고 나면 알아서 탯줄 처리를 다 마치는 고양이와 비교해 보면, 그렇게 혼자 알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이밖의 여러 가지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은 유달리 많은 '교육'이 필요하기도 하다. 다른 많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잘 해내는 일들을 인간은 배워야만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본능 부분이 무척 퇴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흔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것이 오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유달리 큰 뇌에는, 인간인 우리 스스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인식도 하지 못하는 수많은 본능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 하나를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연장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 연장들은 수백 만년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져 왔는데, 진화의 속도가 최근 백년 정도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서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보면 기이하고 부적절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오래된 연장통이라고 칭했다.

첫 번째 연장 진화, 마음을 읽다
두 번째 연장 같은 행성, 다른 선택압
세 번째 연장 유전자를 위한, 유전자에 의한 행동
네 번째 연장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
다섯 번째 연장 병원균, 집단주의, 그리고 부산갈매기
여섯 번째 연장 다윈, 쇼핑을 나서다
일곱 번째 연장 웃으면 복이 왔다
여덟 번째 연장 고기를 항한 마음
아홉 번째 연장 뜨거운 것이 좋아
열 번째 연장 진화의 창 너머 보이는 풍경
열한 번째 연장 자연의 미
열두 번째 연장 여왕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사생활
열세 번째 연장 이야기의 생물학
열네 번째 연장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열다섯 번째 연장 털이 없어 섹시한 유인원
열여섯 번째 연장 가을빛이 전하는 말
열일곱 번째 연장 도덕은 본능이다
열여덟 번째 연장 도덕의 주기율표
열아홉 번째 연장 음악은 왜 존재하는가
스무 번째 연장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 비용
스물한 번째 연장 동성애는 어떻게 설명하죠?
스물두 번째 연장 기억의 목적
스물세 번째 연장 저출산의 진화심리학
스물네 번째 연장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
스물다섯 번째 연장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스물여섯 번째 연장 향수, 어느 MHC 유전자의 이야기
스물일곱 번째 연장 전통 의학의 기원
스물여덟번째 연장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스물아홉 번째 연장 왜 암컷은 자식을 더 돌볼까?
서른 번째 연장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성이니라
서른한 번째 연장 근친상간을 회피하는 이유
서른두 번째 연장 정치적 동물
서른세 번째 연장 복지와 분배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당면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수많은 심리 기제가 진화해 왔다. 그중 일부는 동성애나 종교 같은 원래의 목적과 동떨어진 부작용을 낳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상당히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사소한 문제인가보다.
흥미로운 여러 내용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귀여운 애완동물들이 사실은 인간에게 기생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가설이었다. 애완동물은 인간이 번식하는 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이들을 기른다. 이들은 자신의 후손을 돌보려는 인간의 심리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가 내게 기생하는 거라니!

그밖에도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동작하는 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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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2, 2014

죽음




제목: 죽음
지은이: 임철규
출판사: 한길사
발행일: 20112년 8월 20일

또 죽음에 관계된 책이다. 혹시 모 국가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을까, 그러면 조회수가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기대도 했지만, 딱히 국가기관에서 방문한 듯한 흔적 내지는 조회수 같은 건 전혀 안 보인다.
이 책도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원제: Death) 처럼 철학적인 책이다. 잡문처럼 가볍진 않지만 그렇다고 철학적 의미를 깊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머리말에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나온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그의 영전에 한 편의 글을 바치기로 약속했단다. 계간지 '실천문학'에 '카토, 그리고 노무현' 이라는 글을 실어 약속을 지켰지만, 그 계기로 자살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책은 자살, 그리고 노무현으로 시작한다.
1. 자살 (그 찬반의 역사)
2. 카토, 그리고 노무현
3. 검투사
4. 기억, 망각, 그리고 역사 (아우슈비츠, 그리고)
5. 예술가의 죽음 (오르페우스의 에피소드)
6. 입 속의 검은 잎 (죽음의 새 기형도)
7. 프로이트의 죽음본능
8.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9. 하이데거의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
10. 하계
11. 죽음
마치 논문처럼 수없이 많은 각주와 참고문헌들을 달고 있는 본문은 저자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는 데에는 한 없이 인색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와 '누구는 이렇다더라' 들이 하나 하나 모여서 저자가 말하려는 바를 그저 어렴풋이 보여줄 뿐이다. 죽음, 자살, 죽음을 맞는다는 것...... 작가가 70을 넘겼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쉽게 이러니 저러니 말할 수 없는 주제들이어서 그런 지 모르겠다.
역사 속에서, 또 문화 속에서 죽음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 지 훑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저자가 한국인이고 문인이어서 문장도 유려하다. 그래도 책 표지처럼 새까만, 죽음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두운 색채는 피할 수 없는 내용이다.
죽음도 삶의 한 면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 번쯤 읽고 생각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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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31, 2014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제목: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지은이: 김순천
출판사: 오월의 봄
발행일: 2013년 1월 7일

또 한동안 글 쓰는 일을 잊고 있었다. 드문 드문 뭔가 읽기는 했지만, 검색엔진만 찾아오는 블로그를 굳이 업데이트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귀차니즘에 의해 독후감을 한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한 지인이 가끔씩 내 블로그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선한 충경이었다. 기계가 아닌 인간 독자가 있기는 있었구나. 재직 중인 회사에도 내 블로그 광고를 두어 번 했으니, 회사 사람들 중에도 와 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한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일이 왠지 갑자기 미안해졌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여기 올리게 되었다.
복잡한 설명 필요 없다. 우리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그 자체가 악으로 취급된다. 반면 기업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 
기업은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노조를 파괴하거나, 노조 간부를 미행하거나, 도청하거나, 노사간의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심지어는 협상하자는 제의에 응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제가 없다. 반면 협상을 할 수 없어 파업 카드를 꺼내면 바로 용역깡패와 공권력이 사이좋게 노동자를 짓밟고 나서, 업무방해로 배상금을 청구한다.
책 전반의 내용이 이러하다.
이 책에서 명시적으로 '소개' 되고 있는 기업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삼성전자
2. 한국타이어
3. 쌍용자동차
4. SJM
5. 동부그룹
6. 삼성 SDI
7. 두산그룹
8. 심원테크
그밖에 많은 기업들이 언급되지만, 모두 부정적인 면만 보여준다. 단 하나, 맨 마지막에 언급된 심원테크는 희망고문의 일환인지 제법 상식적인 기업으로 그려지고 있다. - 현재의 기업들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회적 기업' 이라는 종류다.
회사 다니는 것이 짜증나고 우울할 때면 읽어보자. 웬만하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래도 괜찮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거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최소한 내가 겪는 불합리와 부조리가 그냥 우리 나라 평균치 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구나 하는 위안은 될 거다.
혹시라도 사회를 개혁하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절망만 하게 될 테니 차라리 해고 노동자나 각종 사회적 약자들의 시위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주워 듣는 편이 좋게다.
(읽을 때도 우울했지만, 써 놓고 보니 한결 더 우울하네...... 지금 읽고 있는 책도 만만찮게 우울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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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23, 2013

다르지만 같은 노래


제목: 다르지만 같은 노래
지은이: 김희연, 김남훈
출판사: 호밀밭
발행일: 2012년 12월 28일

표지에 적힌 그대로 '다문화노래단 몽땅 이야기' 이다.
몽땅. Montant.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음악인 그룹. 동호회 같은 것이 아니라 당당한 프로 뮤지션이다. 자신들의 공연에 대한 대가를 주 수입원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인천공항공사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단다. 어떤 종류의 후원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 두 명은 위 단체의 단원이다. Montant는 프랑스어로 '오르다' 라는 뜻이란다. 영어의 mount와 비슷한 어원일 것 같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두서없다. 단원들의 이야기. 단체의 이야기. 생각. 사건 등. 그다지 깊이있지 않은 이야기가 그다지 짜임새 있지 않게 펼쳐진다. '그래서 뭐?'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어떻게 보면 '다문화노래단 몽땅'의 홍보 책자처럼도 느껴진다.
단체의 취지도 좋고, 책을 내 알리려는 것 역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책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지 않나 싶다. 가격은 만사천원.

사족: 10월 말, 아니면 11월 초쯤 읽은 것 같은데, 불시에 찾아온 권태와 무기력으로 한동안 블로그 관리도 못했다. 잠시나마 검색엔진의 방문보다 진짜 사람의 방문이 많았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역시 내 블로그의 주 독자는 구글과 네이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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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9, 2013

초콜릿 탐욕을 팝니다


제목: 초콜릿 탐욕을 팝니다 (Chocolate Nations)
지은이: 오를라 라이언 (Orla Ryan)
옮긴이: 최재훈
출판사: 도서출판 경계
발행일: 2012년 9월 17일 (원저 2012년 4월 12일)

초콜릿. 나는 초콜릿을 참 좋아한다. 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가끔 너무 달아서 싫다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진짜 고급 쵸콜렛은 그다지 달지 않다는 사실,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 초콜릿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책이다. 부제로 작게 붙어 있는 '달콤함에 관한 잔혹 리포트' 라는 글을 보면 별로 유쾌하지 않은 내용일 거라는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제는 Chocolate Nations. 초콜릿 나라? 초콜릿을 만드는 나라? 왠지 살짝 동화같은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오히려 내용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으로 가나와 코트 디 부아르 두 개 나라를 보여준다. 가나라면, 우리나라에선 초콜릿 광고 이외의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나라. 코트 디 부아르 라면, 나라 이름인지 도시 이름인지 아니면 무슨 음식 이름인 지도 생소한 어딘가에서 한두 번쯤 들어 본 것도 같은 이름. - 나만 그런가?
혹시 몰라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두 나라 모두 아프리카 서해안 쪽에 있는 나라고, 두 나라가 인접해 있다. 위키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코트 디 부아르가 왼쪽, 가나가 오른쪽.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국가 경제의 큰 축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 두 나라는 카카오 생산량에서 항상 1, 2위를 다투고 있단다. 그 외, 서부 아프리카 쪽의 몇몇 나라에서 생산되는 카카오가 전 세계 카카오의 2/3 정도 된다고 한다.
판매되는 초콜릿 완제품이 100원이라면, 카카오 원료의 가격은 7원 정도 밖에 안 된단다. 제조업체의 이윤이 43원 정도. 게다가 초콜릿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고 카카오 원료를 판매하는 쪽은 대부분 영세한 자영농이다. 카카오는 작물 특성상 대규모 기계화 농법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고, 기후에 까다롭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생산자가 소규모 농민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협상력'이라는 능력에서 비교도 안되게 차이가 나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농민에게서 일괄적으로 카카오를 구매하고, 이를 다시 외국 업체에 판매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가 세금처럼 이윤을 취한다. 구매자가 지불하는 가격은 조금 올라갔을 지 모르지만,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늘어날 리가 없다.
카카오를 둘러싼 이런 비리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도 흔히 납치되고 살해된다. - 우리나라도 이렇게 변해 버릴까봐 두렵다.
뭐 이런 얘기들.
그래서 이들을 도우려는 순진한 생각으로 공정무역 어쩌고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 변해 갔고, 지금은 정부에서 농민에 지불하는 가격과 공정무역 측에서 농민에 지불하는 가격에 차이가 없단다. 오히려 정부가 더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고...... - 이렇게 되 공정무역이란 그냥 마케팅용 문장 하나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카카오 농가에 수익이 돌아갈 수 있을까? 좀 생뚱맞은 답이 있다. 투표를 잘 하면 된다. 일단 민주적인 정부라면, 투표로 정권 교체가 가능하고, 국민의 거의 반수가 카카오 농가인 만큼 카카오 가격을 높게 지불하는 쪽이 정권을 잡을 확률이 높다.
위에 언급한 두 나라 중 한 나라는 이런 절차로 농민의 삶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왠지 이런 절차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서 농민들은 여전히 고단하게 살고 있다. (일단 우리 나라만 봐도 투표가 뭔가 바꿀 거라는 기대는 어리석을 만큼 순진한 거다.)
이 책 역시 수많은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딱히 답 같은 것을 제시하진 않는다. 심지어는 공정무역 어쩌고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초콜릿을 끊는 것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달콤한 맛 뒤에 이런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 하지만 이 책에 달콤한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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