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02, 2012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제목: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지은이: 안정효
출판사: 모멘토
발행일: 2006년 8월 5일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히 우리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초, 중, 고, 대 13년에 걸친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어떻게 글을 써야 잘 쓰는 것인 지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형용사와 동사를 구분하는 방법, 체언과 용언의 차이, 기구격조사와 자격격조사의 용례, 자음동화, 구개음화, 경음화, 격음화, 직유법, 은유법, 제유법, 환유법 등 제목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막상 글을 쓰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만 지겹도록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작성하게 되는 문서마다 한 장 한 장이 스트레스다. 직장으로 가는 첫 관문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시작으로, 보고서, 기술서, 내역서, 경위서, 기안서 등등 문서의 종류는 끝없이 많기도 하다.
어떨 때는 그냥 술술 문장이 만들어 지기도 하지만, 다른 때는 도저히 글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 아는 내용인데 그걸 문자로 적어 내는 일이 왜이리 어려운지. 심지어는 분명 아는 내용이고 내가 적었음에도, 돌아 서서 읽어 보면 '이건 아닌데.....'싶기까지 하다.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라는 부제는 솔깃하기엔 2% 부족했다. 나는 딱딱하고 건조하고 공식적인 문서를 쓰는 일이 더 많으니까. (마음 한 구석에 환타지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글' 이란 것을 써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 같은 것을 얻는다면, 그게 무슨 요술 방망이는 아니겠지만, 직장생활용 작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자의 이력은 좀 특이하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기자생활. 베트남전 참가. 번역. 영문 소설 발표. 한글 소설 발표. 그 외 문학과 번역에 대한 책 다수.
처음엔 잘 몰랐는데, 저자의 문학 경력중 상당 부분은 우리글이 아닌 영어로 되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그래서 한글을 더 한글답게 쓰게 되는 지도 모른다. 나부터도 어떤 문장을 그저 한글로 써내려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데이터를 로드한다' 라고 쓰기도 한다. 그런데 그걸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쓸 상황에서는 영어로 'Load the data' 라고 쓰고 나면 바로 '데이터', '로드' 같은 단어를 차마 주워 올리지 못한다. 도무지 한글 같지 않아서. 결국엔 '자료를 읽어들인다' 라고 번역 아닌 번역을 하곤 한다. - 내가 자주 쓰게 되는 기술 용어들은 거의 영어다. 적당한 한글 표현을 찾기 어려울 때도 많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1941년 생으로, 금년에 72세. 책이 발표된 2006년에도 66세.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의 기량을 닦는 사람 답게 글은 쫀득쫀득 힘있게 감겨 온다. '글 잘 쓰는 방법을 알려 줄게' 라면서 엉성한 구성의 책을 내밀면 아무도 공감을 못하겠지. 그래서 그런지 그냥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잘 짜여진 구성으로 재미있기까지 하게 보여준다. 오죽하면 저자가 글 쓰는 일도 다른 어떤 일 못지 않게 힘들고 지루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데도, '어쩌면 소설가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일지도 몰라'라는 생각까지 들까. 
책은 글쓰기의 여러 요소들을 꼼꼼히 훑어나간다. 단어 고르기, 문장 만들기, 단락으로 전개. 그리고 인물 만들기, 줄거리 짜기, 독자의 관심을 끌기, 우아하게 끝내기 등으로 어떻게 작품을 구성해야 하는 지를 짚어 보고 나면, 글을 쓰는 자세, 분량 늘이기 혹은 줄이기, 고쳐쓰기, 문체 만들기 등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때 필요한 이야기까지 해 준다.
동서양의 고전 소설들을 망라하는 풍부한 예문과 예시, 성공한 작가의 아우라,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기발한 삽화. 거기에 정신 없이 빠져들어 읽게 만드는 재미까지. 책의 내용이 글 잘 쓰는 방법일 뿐 아니라, 책 자체가 잘 쓴 글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의 독특한 경력 탓인지, 가끔 당혹스러운 외국어 표기가 나온다. 흔히 '돈키호테' 라고 표기되는 작품이 '동끼호테' 라고 쓰여진다거나, 흔히 '위대한 개츠비'라고 표기되는 이름이 '위대한 갯스비' 라고 쓰여지는 식. 그래도 이 예들은 바로 이해가 되는데, '아이소포스 우화'가 '이솝 우화' 라는 사실은 한참 읽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형편없는 책이라면 '얘들은 교정하는 성의도 없어' 라고 할 수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오히려 독특한 양념이 된다. '그래, 맞아. 저자는 나와 세대도 다르고, 언어적 배경도 달라.'
뭔가 글을 좀 잘 써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글을 직접 쓸 생각이 없더라도 '작가'라는 사람들은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아니면 그냥 뭐든 주워 들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만 해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쉽게 글을 써내는 요령 같은 것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글 잘 쓰기는 정말 어렵다' 라고 강조한다.
비록 벌써 내용의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지만, 앞으로 내가 쓰는 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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